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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태종대[ 釜山 太宗臺 ]
2005년 11월 1일 국가 지정 문화재 명승 제17호로 지정되었다. 영도의 남동쪽 끝에 위치하는 해발고도 200m 이하의 구릉지역으로, 부산 일대에서 보기 드문 울창한 숲과 기암 괴석으로 된 해식절벽 및 푸른 바다 등이 조화를 이룬다. 옛날에 신선이 살던 곳이라 하여 신선대(神仙臺)라고도 부르며, 신라 태종무열왕 사후(射侯)의 장소였다는 속전(俗傳:東萊府誌 所載)에 따라 현재는 태종대(太宗臺)라는 호칭이 보편화되었다. 맑은 날씨에는 56km 거리인 일본 쓰시마섬[對馬島]이 해상의 흑점(黑點)처럼 희미하게 보이기도 한다. 부근에 신선대바위 •망부석(望夫石)이 있으며 순환관광로의 중간지점인 전망대에는 이곳 명물인 모자상(母子像)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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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오륙도[ 釜山 五六島 ]
2007년 10월 1일에 국가지정문화재 명승(名勝) 제24호로 지정되었다. 면적 0.02㎢, 최고점 68m(굴섬)이다. 예로부터 부산의 상징물이었다. 영도구(影島區)의 조도(朝島)와 마주보며, 부산만 북쪽의 승두말로부터 남동쪽으로 6개의 바위섬이 나란히 뻗어 있다.
이 섬들은 육지에서 가까운 것부터 방패섬(2,166㎡)·솔섬(5,505㎡)·수리섬(5,313㎡)·송곳섬(2,073㎡)·굴섬(9,716㎡)·등대섬(3,416㎡)으로 나누어진다. 송곳섬은 작고 모양이 뾰족하며, 굴섬은 가장 크고 커다란 굴이 있다. 육지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등대섬은 평탄하여 밭섬이라고도 하였으나, 등대가 세워진 뒤부터 등대섬이라고 한다. 등대섬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무인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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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오랑대(釜山 五郞臺)
오랑대는 일출 명소로 알려져 있어 사진 동호인들 사이에서는 너무나 유명한 곳이다. 기암절벽을 부딪는 파도와 떠오르는 해가 장관을 이루고 4월에는 바다를 바라보는 언덕에 유채꽃이 만발한다. 오랑대라는 이름은 기장에 유배온 친구를 만나러 왔던 다섯 명의 친구들이 모여 술을 마시고 즐겼다는 설화에서 유래한 것으로 기암절벽에 앉아 파도소리를 안주 삼아 술잔을 기울였을 남자들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이 어렵지 않을 만큼 바다 풍광이 절경이다. 오랑대 끝에는 인근의 사찰 해광사에서 지은 용왕단이 서 있어 그 멋을 더한다. 해동 용궁사에서 시랑대로 가는 암반 산책로를 따라가면 오랑대와 연결되니 산책 삼아 해동 용궁사를 거쳐 둘러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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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시랑대(釜山 侍郞臺)
부산광역시 기장군의 기장읍 시랑리에 소재한 대이다. 용궁사(龍宮寺) 옆에 있으며 부근에 국립수산진흥원이 있다. 예부터 기장현의 제일 명승지로 일컬어진 곳이다. 시랑대는 본래는 원앙대(鴛鴦臺)라고 불렀다. 시랑대라고 불리기 시작한 것은 1733년(영조 9) 기장현감 권적(權樀)이 이곳에 와서 자기의 벼슬을 시랑(侍郞)이라고 하여 시를 짓고 '시랑대(侍郞臺)'라는 글자를 바위에 새긴 후에 시랑대로 불렀다고 한다. 이후 여러 문객들이 와서 시를 읊고 글씨를 새겼다. 1894년(고종 31)에는 기장군수·홍문관 교리였던 손경연(孫慶鉉)이 이곳에 와서 학사암(學士巖) 이라는 글자를 새겼다. 관련 지명으로 시랑리마을과 시랑산(82m)이 있다. 한편 원앙대지명은 공수마을의 옛 이름인 비옥포(非玉浦, 飛玉浦)·비오포(飛烏浦)·비오개 등과 관련이 있다. 이 지명은 철새인 비오리[紫鴛鴦]가 많이 몰려와서 생긴 것이라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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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시랑대[(釜山 侍郞臺 )
부산광역시 기장군의 기장읍 시랑리에 소재한 대이다. 용궁사(龍宮寺) 옆에 있으며 부근에 국립수산진흥원이 있다. 예부터 기장현의 제일 명승지로 일컬어진 곳이다. 시랑대는 본래는 원앙대(鴛鴦臺)라고 불렀다. 시랑대라고 불리기 시작한 것은 1733년(영조 9) 기장현감 권적(權?)이 이곳에 와서 자기의 벼슬을 시랑(侍郞)이라고 하여 시를 짓고 '시랑대(侍郞臺)'라는 글자를 바위에 새긴 후에 시랑대로 불렀다고 한다.
이후 여러 문객들이 와서 시를 읊고 글씨를 새겼다. 1894년(고종 31)에는 기장군수·홍문관 교리였던 손경연(孫慶鉉)이 이곳에 와서 학사암(學士巖)이라는 글자를 새겼다.한편 원앙대지명은 공수마을의 옛 이름인 비옥포(非玉浦),비오포(飛烏浦)·등과 관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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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암 촛대바위(湫岩;Candlestick Rock)
강원도 동해시 추암동 추암해수욕장 근처 해안에 있다. 바다에서 솟아 오른 형상의 기암괴석으로 그 모양이 촛대와 같아 촛대바위라 불린다. 촛대바위 주변에 솟아오른 약10여척의 기암괴석은 동해바다와 어울려져 절경을 연출하며, 그 모양에 따라 거북바위, 두꺼비바위, 부부바위, 코끼리바위, 형제바위 등으로 불린다.
이곳의 바위군(群)은 동해시 남서부에 분포된 석회암이 노출된 것이다. 석회암은 화학적 풍화작용의 영향을 많이 받는데, 이 일대의 석회암이 토양 밑에 있을 때 지하수의 작용으로 용해되어 독특한 모양을 이루었고, 이것이 바닷물에 의해 노출되어 지금과 같은 절경을 이루게 되었다. 특히 해돋이 무렵, 태양이 촛대바위에 걸리는 모습이 장관을 이루어 해돋이 명소로 각광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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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담삼봉[ 嶋潭三峰 ]
남한강의 맑고 푸른 물이 유유히 흐르는 강 한가운데 위치한 도담삼봉. 늠름한 장군봉(남편봉)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교태를 머금은 첩봉(딸봉)과 오른쪽은 얌전하게 돌아앉은 처봉(아들봉) 등 세 봉우리가 물 위에 솟아 있다. 이곳은 조선 개국공신 정도전이 자신의 호를 삼봉이라 할 만큼 젊은 시절을 이곳에서 청유하였다 한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아들을 얻기 위해 첩을 둔 남편을 미워하여 돌아앉은 본처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살펴볼수록 그 생김새와 이름이 잘 어울려 선조들의 지혜와 상상력이 감탄스럽다. 그리고 장군봉에는 '삼도정'이라는 육각정자가 있는데, 일찍이 퇴계 선생은 "산은 단풍잎 붉고 물은 옥같이 맑은데 석양의 도담석양엔 저녘놀 드리웠네 신선의 뗏목을 취벽에 기대고 잘적에 별빛달빛 아래 금빛파도 너울지더라"는 주옥같은 시 한 수를 남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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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양 사인암 [丹陽 舍人巖]
단양팔경 중 하나로 푸른 계곡을 끼고 있는 70m 높이의 기암절벽이다. 고려 말의 학자 우탁(1263~1343년) 선생이 정4품 ‘사인재관’ 벼슬에 있을 때 휴양하던 곳이라 해서 사인암이라 불리게 되었다. 기암절벽 위에 서 있는 노송이 멋스러우며 우탁 선생이 직접 새긴 ‘뛰어난 것은 무리에 비유할 것이 없으며 확실하게 빼지 못한다. 혼자서도 두려운 것이 없으며 세상에 은둔해도 근심함이 없다’는 뜻의 글씨가 암벽에 남아 있다.
조선시대 최고의 화가 김홍도가 그린 단원화첩에도 빼다 박은 듯한 사인암과 계곡의 절경이 남아 있으며 실제로 사인암 아래 앉아 기암절벽을 싸고 흐르는 물줄기를 바라보면 옛날 선비들이 이 자리에 앉아 시 한 수 읊었을 듯한 분위기를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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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산 화양구곡( 槐山華陽九曲 )
괴산 화양구곡은 속리산국립공원을 흐르는 화양천 3㎞ 구간에 걸쳐 하류에 해당하는 제1곡부터 상류에 해당하는 제9곡까지의 자연경관이 잘 보존된 곳이다. 아홉 개 골짜기 모두가 아름다운 경치를 간직하면서 명승으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주변에 펼쳐진 선유동계곡과 함께 속리산의 북쪽을 수려하게 만드는 자연경관이다.
1975년에 화양동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1984년에 속리산국립공원에 편입되었다. 화양계곡은 넓고 깨끗한 암반과 맑은 하천, 우뚝하게 솟은 기암절벽과 울창한 수목이 한 폭의 산수화처럼 절묘한 조화를 이루어 예로부터 금강산 남쪽에서 으뜸이라는 찬사를 받아왔다. 따라서 ‘화양동 소금강’으로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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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제통문( 羅濟通門 )
설천면은 무주읍에서 구천동으로 가는 길목으로 삼국시대에는 신라와 백제 양국의 경계였다고 한다. 지금도 동굴 양쪽에 위치한 자연부락인 무풍 방면의 이남(伊南)과 무주 방면의 새말〔新村〕은 1㎞ 정도 떨어져서 행정구역으로 모두 소천리에 속하지만 언어와 풍속이 서로 다르고 통혼(通婚)도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므로 삼국시대부터 지금까지 각기 풍속과 전통이 판이하게 유지되어왔음을 알 수 있다.
이곳에는 삼국시대와 관계된 유적이나 전설이 많다. 부근의 야산에 산재한 약 3백여 기의 고분은 신라와 백제간에 벌어진 전투에서 전사한 장병들의 무덤이라고 전해지며, 파리소(沼)라는 연못은 양국의 격전시에 시체가 산처럼 쌓여 파리가 모여들었다고 하여 붙여진 명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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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 구천동 일사대 일원[ 一士臺一圓 ]
무주구천동 33경(景)의 제6경이자 3대 경승지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일사대(一士臺) 주변의 명승지이다.일사대(一士臺)는 무주구천동 계곡을 흘러내려온 원당천(元塘川)의 침식작용에 의하여 발달된 하식애(河蝕崖)로, 원당천이 돛대 모양의 기암(奇巖)을 휘어감고 도는 모습이 마치 물로 성을 이룬 것처럼 보인다 하여 수성대(水城臺)라고도 한다.
중국의 무이구곡(武夷九曲)을 본따 무주구천동에 무계구곡(武溪九曲)을 정하고, 일사대를 제4곡이라 하였다. 하늘을 찌를 듯이 우뚝 솟은 천길 낭떠러지의 청암(靑岩)이 천년송(千年松)을 머리에 인 채 일사대를 굽어보는 모습이 장관이다. 청암에서 약 20m 올라가면 널찍한 암반층이 있고, 약 150여m 위로는 기이한 바위가 장관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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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 파회·수심대 일원( 茂朱 巴洄·水心臺 一圓 )
파회(巴?)는 구천동의 제11경에 속한다. 제1경인 나제통문(羅濟通門)과는 11㎞ 떨어져 있고, 제10경인 만조탄의 상류에 해당한다.
고요한 소(沼)에 잠겼던 맑은 물이 급류를 타고 쏟아지며 물보라를 일으키고, 기암(奇巖)에 부딪친 물이 제자리를 맴돌다 기암 사이로 흘러들어가는 모습이 빼어난 경관을 이룬다.
수심대(水心臺)는 구천동의 제12경으로 파회 상류 약 600m 지점에 있다. 수심대라는 명칭은 일지대사가 이곳을 흐르는 맑은 물에 비치는 그림자를 보고 도를 깨우쳤다는 뜻으로 붙인 이름이며, 기암괴석이 절벽을 이루고 병풍처럼 두른 모습이 금강산을 연상시킨다 하여 소금강(小金剛) 또는 금강봉(金剛峰)이라고 부를 만큼 경관이 빼어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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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 의림지(提川 義林池)
충북 제천시 모산동에 있는 원삼국시대 저수지로 충청북도 기념물 제11호이다. 본래의 이름은 임지(林池)였으며 고려 성종 11년(992)에 군현의 명칭을 바꿀 때 제천을 의원현(義原縣) 또는 의천(義川)이라 불렀는데, 그 이유로 저수지의 이름에 ‘의(義)‘자를 붙여 “의림지”라 부르게 된 것으로 추측된다.문헌에 기록된 바에 따르면 조선 세종때에 충청도관찰사인 정인지가 고쳐짓고, 다시 세조 3년(1457) 크게 보수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뒤 1910년부터 5년간에 걸쳐 3만여 명이 참가하여 보수하였고, 1972년 대홍수로 서쪽 둑이 무너져 이듬해에 보수하였다. 저수지의 둘레는 약 1.8㎞, 면적은 158,677㎡, 수심은 8∼13m이다. 제천의 의림지는 김제의 벽골제, 밀양의 수산제와 함께 원삼국시대의 수리시설로서, 당시의 농업기술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 |
청송 주산지(靑松 注山池)
주산지는 1720년 8월 조선조 경종원년에 착공하여 그 이듬해 10월에 준공한 저수지다. 길이는 200m이고 평균수심이 약 8m인 주산지는 준공이후 현재까지 아무리 오랜 가뭄에도 물이 말라 밑바닥이 드러난 적이 한번도 없다. 주산지에는 뜨거운 화산재가 엉겨 붙어 만들어진 용결응회암이라는 치밀하고 단단한 암석이 아래에 있고, 그 위로 비용결응회암과 퇴적암이 쌓여 전체적으로 큰 그릇과 같은 지형을 이루고 있다.
비가 오면 비응결응회암과 퇴적암층에서 스펀지처럼 물을 머금고 있다가 조금씩 물을 흘려보내기 때문에 이처럼 풍부한 수량을 유지할 수 있었다. 특히 주산지에는 150여 년이나 묵은 왕버들이 자상하고 있는데, 그 풍치가 아름다워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는 명소다.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등재된 24개 명소 가운데 청송얼음골, 달기약수탕과 함께 수리명소에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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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 탄금대[ 忠州 彈琴臺 ]
주산지는 1720년 8월 조선조 경종원년에 착공하여 그 이듬해 10월에 준공한 저수지다. 길이는 200m이고 평균수심이 약 8m인 주산지는 준공이후 현재까지 아무리 오랜 가뭄에도 물이 말라 밑바닥이 드러난 적이 한번도 없다. 주산지에는 뜨거운 화산재가 엉겨 붙어 만들어진 용결응회암이라는 치밀하고 단단한 암석이 아래에 있고, 그 위로 비용결응회암과 퇴적암이 쌓여 전체적으로 큰 그릇과 같은 지형을 이루고 있다.
비가 오면 비응결응회암과 퇴적암층에서 스펀지처럼 물을 머금고 있다가 조금씩 물을 흘려보내기 때문에 이처럼 풍부한 수량을 유지할 수 있었다. 특히 주산지에는 150여 년이나 묵은 왕버들이 자상하고 있는데, 그 풍치가 아름다워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는 명소다.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등재된 24개 명소 가운데 청송얼음골, 달기약수탕과 함께 수리명소에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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