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레스트산 [Mount Everest]

 

인도의 측량국장 앤드루 워가 1846년부터 1855년까지 히말라야 산계의 3각측량을 계속하였는데, 특히 히말라야의 고봉 79개를 커다란 경위의(經緯儀)로 정밀 측정한 결과, 1852년까지 피크 15(인도 측량국 번호)라고만 부르던 이 산이 세계 최고임을 확인하였다. 현지명이 1865년까지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측량국장 워의 제창으로 전임자 에버리스트의 공적을 기려 '마운트 에베레스트'라고 명명하였다. 히말라야의 산이름에 개인의 이름을 붙인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이후 몇 가지 명칭이 보고되었는데, 티베트에서 옛부터 '초모룽마(Chomo Lungma:세계의 母神이라는 뜻)'라는 이름이 사용되었다는 사실이 판명되었다. 특히 스벤 헤딘이 프랑스 예수회가 제작하여 1733년에 공간(公刊)한 지도에 이 명칭이 사용되어 있음을 발견하고, 초모룽마로 고칠 것을 강력히 주장하였으나 찬성을 얻지 못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아시아의 국가들이 잇달아 독립하여 양상이 바뀌었다. 특히 중국은 주무랑마[珠穆朗瑪] 외의 명칭을 인정하지 않으며, 네팔에서는 '사가르마타(Sagarmatha)'라 부른다. 에베레스트 최초의 공식높이는 약 8,840m였는데, 이는 1852년 에베레스트에서 백 수십km나 떨어진 벵골평야의 6개 기점에서 측량한 것이다.

.황산 [Mount Huangshan,(黃山)]

 

황산은 중국에서 경치가 가장 아름다운 산으로 유명하며, 복잡한 지질사로 흥미로운 곳이다. 1억 년 전에 중생대의 지각 운동과 잇따른 융기 작용을 거치면서 옛 해양인 양쯔 해(揚子海)가 사라지고 나서 이곳에는 수많은 봉우리가 눈길을 끄는 흥미로운 지형이 형성되었다. 특히 흥미를 끄는 지형과 지질 경관으로는 빙하 작용과 지질 구조의 활동으로 생긴 습곡과 단층 지괴, 그리고 석회질 모래사장, 폭포, 계단식 호수 등 고지대 카르스트 지형이 특징적이다. 이 유적은 거의 유례가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장관을 이루며 높은 산과 숲, 호수, 계단식 호수, 폭포, 석회질 모래사장 등이 어우러져 눈길을 사로잡는다. 호수는 맑은 파란색에 옥색 또는 초록색을 띠며 가을에는 나뭇잎이 온갖 색으로 물드는 이곳은 색채가 다채롭기로도 유명하다. 식물과 동물도 매우 다양하지만 많은 수가 멸종이 우려된다. U자형 계곡, 횡흔의 원형 암석들은 지질 시대 제4기에 빙하 작용이 있었다는 증거이다. 돌기둥 숲(석림)이 솟아 있으며, 기암, 폭포, 호수 그리고 온천이 있다. 가장 오래된 암석은 5억 7,000만 년 전 원생대에 양쯔 해에서 퇴적한 퇴적암과 변성암으로, 황산 남쪽 기슭과 샤오야오시 단층 남쪽 기슭에 노출되어 있다. 조산 운동이 일어나던 시기에 형성된 화강암은 세로 방향의 마디가 잘 발달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며 그로 인해 인상 깊은 동굴과 산마루, 계곡이 많다

     
 
 

장자제[Zhangjiajie ,張家界(장가계)]

 

1982년 중국 최초로 산림보존지역으로 지정된 이 지역은 우리 말로 하면 무릉원(武陵源). 바로 도원명의 <도화원기(桃花源記)>에 나오는 무릉도원의 실제 무대다. 그렇지만 우링위안(무릉원)은 우리에게 '장자제(長家界)’라는 지명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장자제는 크게 장자제 삼림공원, 쒀시위 풍경구, 톈즈산 풍경구의 세 영역으로 나뉘며 삼림공원 쪽 입구와 정반대에 있는 우링위안 쪽 입구 두 곳으로 입장할 수 있다. 우선 입구에서 진볜시(金鞭溪)라는 표지판을 따라 길을 걷는다. 진볜시는 장자제를 흐르는 계곡으로 총 길이가 7.5㎞에 달한다. 산책을 끝내고 수이라오쓰먼(水绕四门)에 도착하면 위안자제(袁家溪)가 시작된다. 위안자제는 웅장하고 신비로운 장자제의 매력이 한껏 발산된다. 먼저 위안자제로 올라가는 바이룽(白龙) 엘리베이터를 탑승한다. 높이 313m의 규암기둥을 뚫어 만든 엘리베이터를 타고 빠른 속도로 올라가 발 밑을 내려다보면 순간적으로 정신이 아찔해진다. 위안자제는 높은 곳에 서서 주변의 기암괴봉을 감상하게 되는데, 지금까지 평화롭고 한적하게 산책했던 것과는 또 다른 기분이 느껴진다. 엘리베이터 하차지점에서 20분가량 걸으면 미훈타이(迷魂台)가 나온다. 여기서 다시 15분 정도 걸으면 톈샤디이차오(天下第一桥)가 보인다.

.구이린 [Guilin,桂林(계림)]

 

주장[珠江] 수계의 구이장[桂江]에 임한 하항(河港)으로, 일찍이 진(秦)나라 때부터 발달한 화난[華南] 최고(最古)의 도시이며, 한때 광시성[廣西省]의 성도(省都)가 된 적도 있다. 계림의 명칭은 이곳이 예로부터 계수나무가 많은 지역으로 ‘계수나무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곳’이라는 뜻이다. 빼어난 풍치로 예로부터 시인과 화가들의 글과 그림의 소재가 되어왔다. '계림의 산수는 천하 제일이다(桂林山水甲天下)' 라는 명성을 들을 정도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지 중의 하나이다. 특히 독특한 모양의 기암괴석으로 유명한데, 이 기암괴석은 카르스트지형인 이곳에서 지각변동으로 인해 해저가 지형적으로 돌출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이런 기묘한 형태의 지형은 각종 영화의 배경장소로도 이용되었으며, 중국 영화 《소림사(少林寺)》도 이곳을 무대로 한 것이다. 연평균 기온은 18.8℃이다. 아열대 기후로 4계절 내내 따뜻하여 사람이 살기에 적당하다. 예로부터 하천교통의 요충지였고, 오늘날에는 샹구이[湘桂]철도가 개통되어 전통적인 상업 외에 면방직을 중심으로 화학·정비·농기구·제사·제지공업이 활발하다.

     
 

 

세계의 국립공원 [National park of the world]_01

 

국립공원은 자연 환경 보호뿐만 아니라 국민의 여가선용 지역으로, 국제적으로는 한 국가의 대표적인 관광지역으로서의 역할까지 한다. 국립공원 제도는 미국에서 처음 시작되었으며, 지금은 세계 여러 나라가 국립공원을 설치하고 있다. 옐로스톤 국립공원은 1872년에 지정된 세계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3개 주에 걸쳐 있으며, 철저한 자연보호가 이루어진 웅대한 자연공원이다. 또한 세계 각국의 암벽등반가들이 많이 찾는 캘리포니아 주의 요세미티 국립공원은 빙하의 침식작용으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계곡과 엘캐피탄, 하프돔과 같은 1,000여 미터 높이를 지닌 화강암 절벽과 폭포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경관으로 유명하다. 이 외에도 그랜드 캐니언 국립공원은 그 웅장함이 세계적인 곳으로 손꼽힌다. 캐나다도 국립공원 제도가 잘 발달된 나라다. 로키 산맥에 있는 앨버타 주의 밴프와 재스퍼 국립공원은 캐나다가 자랑하는 2대 국립공원이다. 이밖에도 멕시코, 베네수엘라,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에도 국립공원이 설치되어 있다. 유럽에서는 국립공원 제도가 도입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며, 대신 자연보호구역 제도가 정착되어 있다. 미국의 영향력이 크게 미친 태평양 연안국에서는 특히 2차 세계대전 이후 국립공원 제도가 도입되었다.

세계의 국립공원[National park of the world]_02

 

국립공원은 자연경치와 유서 깊은 사적지 및 희귀한 동식물을 보호하고 국민의 보건·휴양·교화 및 정서생활의 향상에 기여할 목적으로 지정한 한국가의 풍경을 대표하는 수려한 자연풍경지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관계 부처·청의 장과 협의하고 관할도지사의 의견을 들은 뒤, 국토건설종합개발심의회의 심의를 거쳐 환경부 장관이 지정하게 되어 있다. 따라서 환경부 장관은 공원의 효율적인 보호와 이용을 도모하기 위하여 공원 계획을 결정한다. 국립공원은 자연보존지구·자연환경지구·농어촌지구·집단시설지구 등으로 구분한다. 자연보존지구는 모든 자원이 원시적으로 보전되어 있으며 동식물 또는 천연기념물이 훼손됨이 없이 잘 보존되어, 역사 및 학술상의 가치가 있고 보호할 필요가 있는 지역을 말한다. 자연환경지구는 자연보존지구·농어촌지구·집단시설지구를 제외한 일반 국민의 관광 및 휴양지로서 가치가 높은 지역으로, 조림·조경 등의 시설만을 허용할 수 있는 지역을 말한다. 농어촌지구는 주민에게 필요한 농어업 행위와 그에 준하는 시설만을 할 수 있는 지역을 말한다. 집단시설지구는 공원 이용자의 편의를 제공하거나 공원의 관리와 보호를 위하여 공원 시설 및 숙박 시설의 집단화되어야 할 곳을 말한다.케냐는 노프젤리를 국립공원으로 지정하여 세계 최대의 자연공원으로 개발하였다.

     
 
 

한국의 궁전(Korean Palace)

 

조선시대에 건설된 궁전들은 오늘날까지 남아 그 모습을 완전히 파악할 수 있는 것이 많다. 태조는 도읍을 한양으로 옮기면서 경복궁(景福宮)을 지어 역대(歷代)의 정궐(正闕)이 되게 하였으며, 그 후 여러 왕들이 창덕궁(昌德宮) ·창경궁(昌慶宮) ·경덕궁(慶德宮) ·덕수궁(德壽宮) 등을 조영하였다. 조선시대 궁전건축의 극치인 경복궁은 1394년(태조 3) 서울 북악산 아래에 중국황성을 본떠 건립되었는데, 임진왜란 때 불에 타 오랫동안 폐허로 남아 있다가 1867년(고종 4) 흥선대원군에 의하여 중건되어 창건 때보다 더 큰 규모의 궁전이 되었다. 정전(正殿)인 근정전(勤政殿)을 중심으로 강녕전(康寧殿) ·교태전(交泰殿) ·흥복전(興福殿) ·사정전(思政殿) ·만춘전(萬春殿) ·자경전(慈慶殿) 등 많은 전각이 있다. 창덕궁은 태종 때 이궁(離宮)으로 지어져 여러 차례의 화재로 지금은 초기의 모습과 많이 달라졌는데, 후원인 금원(禁苑:비원)은 대표적인 한국정원으로 그 의의가 크며, 원내에 세워져 있는 누각 ·정자와 더불어 한국의 궁전 후원으로서의 멋을 보여주고 있다. 창경궁은 1484년(성종 15)에 건축된 것으로, 정문인 홍화문(弘化門)과 정전인 명정전(明政殿) 및 명정문(明政門)이 당시의 모습대로 지금 남아 있어, 조선 전기의 궁전건축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한국의 사찰[Korean Temple(寺刹)]

 

인도 불교가 중앙아시아를 거쳐 북중국으로 전파될 당시, 이미 인도의 사찰은 출가승을 위한 가람과 재가 신도를 위한 스투파가 통합되어서 건물[堂]과 탑이 있는 복합체가 되었다. 이러한 당탑가람(堂塔伽藍)이 중국에 전해져 중국 사찰건축의 기본이 되었고, 우리나라의 사찰 역시 당탑가람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중국 한(漢)나라 때 불교가 최초로 전해지고, 선교를 위해 파송된 인도 승려들이 거처할 건축물이 필요하게 되었다. 아직 중국에는 불교용 건축물이 없었기 때문에 홍려사(鴻廬寺)라고 하는 기존 관청에 머무르게 하였는데, 이것이 훗날 동아시아 사찰건축의 기원이 되었다. 또한 한나라에는 평원성(平原城)을 보호하기 위한 3∼5층의 전망용 망루들이 발달하였는데, 이 고층 목조건물을 개조하여 불탑으로 대체했다. 인도의 당탑가람 형식을, 중국에 이미 존재했던 관청과 망루를 변용하여 수용한 것이다. 이는 중국 문화 특유의 실용주의적 발상이라 할 수 있는데, 목조건축물로 완전히 변용된 중국식 당탑가람이 한반도에 유입되어 우리나라 사찰건축의 원류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