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루[ 嶺南樓 ]-밀양(密陽)

보물 제147호. 정면 5칸, 측면 4칸의 익공식(翼工式) 겹처마 팔작지붕건물.조선시대 밀양도호부의 객사 부속건물로, 손님을 접대하거나 주변 경치를 보면서 휴식을 취하던 건물이다.원래 그 자리에는 신라시대에 세워진 영남사(嶺南寺)라는 절이 있고 절의 종각으로 금벽루(金壁樓)라는 작은 누각이 있었는데, 고려시대에 절은 없어지고 누각만 남아 있었던 것을 1365년(공민왕 14) 누각을 새로 짓고 절의 이름을 따서 영남루라 하였다.조선시대에 들어와 1460년(세조 6)에 중수하면서 규모를 크게 넓혔으며, 선조 때 소실되었던 것을 1637년(인조 15) 다시 지었고 마지막으로 1844년(헌종 10) 불에 탔던 것을 다시 세워 오늘에 이르고 있다.

 

광암정[ 廣巖亭 ] -합천(陜川)

1984년 11월 23일 경상남도문화재자료 제101호로 지정되었으며 권재윤이 소유, 관리하고 있다. 1886년(고종 21) 매와거사(梅窩居士) 권정기(權正基)가 아버지 병덕(秉德)을 위하여 지은 정자이다. 권병덕은 중추원 의관 등을 지냈으며 호는 광암으로 정자의 이름이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원래의 건물은 대병면 창리 산9번지의 경치가 뛰어난 자연 암석 위에 세워져 있었으나 합천댐 건설로 수몰 지역에 속하게 되어 1985년 지금의 장소로 옮겨 복원하였다. 이 건물은 본래 정면 2칸, 측면 1칸의 방이 있었고 천장은 우물천장이었으며 마루 밑에는 5개의 4각 돌기둥과 1개의 8각 돌기둥으로 된 받침기둥을 세워 마루를 받친 양식이었다.

 

 방화수류정[ 訪花隨柳亭 ] -수원(水原)

원 화성(사적 제3호)에 있는 네 개의 각루(角樓; 성벽 위의 모서리에 지은 누각) 중 동북쪽 각루로, 동북각루라고도 부른다. 적의 동태를 살피는 망루이자 군사를 지휘하는 지휘소인 동시에 용연(龍淵)·수원천 등 주변 경관과 어우러지는 정자이기도 하다. 성 밖에 있는 연못인 용연의 남쪽, 화성의 북쪽 수문(水門)인 화홍문(華虹門)의 동쪽 언덕 꼭대기에 자리 잡고있다. ‘방화수류(訪花隨柳)’라는 명칭은 ‘꽃을 찾고 버들을 따라 노닌다’는 뜻으로, 송나라 성리학자 정호(程顥)의 시 〈춘일우성 春日偶成〉에 나오는 ‘운담풍경오천 방화수류과전천(雲淡風經午天訪花隨柳過前川)’이라는 구절에서 땄다.1794년(정조 18) 10월 19일에 완공한 건축물로, 1848년(헌종 14) 중수하였다.

           
 

   

 

 조양각[ 朝陽閣 ] -영천(永川)

조양각(朝陽閣)은 서세루(瑞世樓)라고도 하며, 고려 말에 명원루(明遠樓)로 창건되어 여러 차례 시대의 변란에도 지금까지 우뚝 서있는 영천을 상징하는 유적이다. 조양각은 우리나라의 대표적 누각으로 손꼽히는 경상남도 밀양의 영남루·진주의 촉석루 등과 함께 영남 3루라고도 전하며, 안동의 영호루·울산의 태화루·양산의 쌍벽루·김천의 연자루와 합쳐 영남 7루라고 기록하기도 한다.영천의 가장 대표적인 인물인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를 비롯해 수많은 명현들이 조양각을 거쳐 갔으며 현재까지 그들의 시가 편액되어 남아있다.영천은 조선 시대 부산에서 한양에 이르는 영남대로의 중간 지점으로 금호강변의 조양각에서 왜의 조선통신사가 기착점으로 이용하고 마상연(馬上宴) 등 큰 행사를 벌이기도 했다.

 

삼가 기양루[ 三嘉 岐陽樓 ]-합천(陜川)

건축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합천군에서 가장 오래된 누각으로 옛 고을 수령들의 연회장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삼가면 소재지의 중심도로변에 위치하여 훼손이 심하고 자주 보수를 해야 하므로 보존에 어려움이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 2층 규모에 겹처마 팔작지붕을 올린 5량(五樑) 구조의 익공집으로 2층 마루를 따라 닭볏 모양의 난간(欄干)이 둘러져 있다. 기단이 따로 없고 평지에 바로 약 40cm의 원기둥형으로 잘 다듬은 화강암으로 된 주춧돌을 놓고 그 위에 기둥을 세웠다. 그 밖에 합천군에는 많은 누정이 있는데 경상남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된 함벽루(59), 광암정(101), 사의정(103), 현산정(156), 벽한정(233)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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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양루[ 岳陽樓 ] -하동(河東)

악양루의 창건 연대는 정확하지 않으나, 조선 시대 전 시기에 걸쳐 악양루와 관련된 유학자들의 한시가 전하고 있다. 변천 역사에 대해서는 자세하지 않으며, 현전하는 건물을 중심으로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다. 1936년 손영인(孫永仁), 이태성(李台成), 박준구(朴準球) 등 하동 지역 인사들에 의해 중건하자는 발의가 있었고, 이어 1937년 9월 악양루의 옛 터인 아미산 아래 언덕에 준공하였다. 이후 누대가 너무 높은 곳에 돌출되어 있어 비바람에 견디지 못하자, 여론을 따라 1947년 현재 위치인 하동군 악양면 미점리 도로변으로 이건하였다. 그러나 이건한 자리 또한 인가가 멀고 관리할 사람이 없어 유랑배들의 기식처로 이용되었으며, 건물이 파괴될 우려가 많았다.

           
 

 

 
 

광풍루[ 光風樓 ] -함양(咸陽)

광풍루는 조선시대 관아에서 공식적인 연회 등을 위해 건립한 중층 누각으로 1412년(태종 12) 이안현감(利安縣監)이었던 전우(全遇)가 처음 건립한 후 몇 차례의 이건과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함양 읍내에 있는 학사루와 유사하며 앞으로는 금호강을, 뒤로는 안의읍내를 조망할 수 있도록 하였다. 1412년(태종 12)에 건립하여 선화루라 명명한 것을 1425년(세종 7)에 강변로로 옮겼다. 그 후 1494년(성종 25)에 정여창이 중수하고 광풍루라 고쳐 불렀다. 1597년[정유재란] 때 소실된 것을 1601년(선조 34)에 복원하였고, 1686년(숙종 9)에 다시 지었다. 이후 1980년에 단청을 정비하였으며, 2014년 문화재 훼손 등의 이유로 뒤편으로 10m 정도 이건한 후 주변을 정비하였다. 2016년 단청을 새로이 정비하였다.

 

동호정[ 東湖亭 ]-함양(咸陽)

2005년 10월 13일에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381호로 지정되었다. 임진왜란 때 선조의 의주 몽진을 도와 공을 세운 동호 장만리를 기리기 위하여 그의 9대손으로 가선대부오위장을 지낸 장재헌 등이 중심이 되어 1895년 건립한 정자이며 1936년에 중수하였다. 남강천 담소 중의 하나인 옥녀담에 있으며 화림동 계곡의 정자 중 가장 크고 화려하다. 동호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5량 구조로 중층 누각 건물이다. 내부에는 배면의 중앙칸을 막아 구성한 판벽이 남아 있는데, 정면의 좌측으로 통나무를 깎아 만든 계단이 있어 누로 오르게 하였다. 마루는 장마루가 깔려 있는데, 이것도 원래는 우물마루였으나 후에 변형된 것이다. 겹처마에 팔작지붕형식이다.

 

학사루[ 學士樓 ] -함양(咸陽)

언제 건립되었는지 확실하지 않으나 최치원(崔致遠)이 함양태수로 있을 때 이곳에 올랐다는 구전(口傳)으로 미루어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함양 사근산성(咸陽沙斤山城:사적 152)이 함락되면서 불탄 것을 1692년(숙종 18) 군수(郡守)인 정무가 중건했다는 기록이 발견되었다. 원래 조선시대 객사(客舍) 자리인 지금의 함양초등학교 안에서 교실과 군립도서관 등으로 이용되다가 1979년 이곳으로 이전·복원했다. 영남학파의 거두 김종직(金宗直)이 군수로 부임하여 이곳에 걸린 유자광(柳子光)의 현판을 철거한 것이 1498년(연산군 4) 무오사화(戊午士禍)의 요인이 되기도 했다.

           
     
 

함화루[ 咸化樓 ] -함양(咸陽)

1986년 8월 6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58호로 지정되었다. 함양군이 소유하고 있다. 원래는 조선시대 함양군의 읍성(邑城) 남문(南門)인 망악루(望岳樓)였으나 1932년 지금의 위치에 옮겨 지었다. 본래의 명칭인 망악루는 ‘멀리 지리산(智異山)이 보인다’는 뜻이며 1932년 고적보존회 대표 노덕영(盧悳永)이 지금의 함양 상림(천연기념물 154) 공원에 이건(移建)하면서 함화루로 이름을 바꾸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홑처마 팔작지붕집으로 2층 누각이며, 면적은 37.14㎡이다. 아래층에는 자연석 주초(柱礎) 위에 두리기둥만을 세우고, 그 위에 마루를 깔고 계자난간을 둘렀다. 위층 역시 두리기둥이며 기둥머리에 초각(草刻)을 한 쇠서를 2개 겹쳐 올렸다.

 

물염정[ 勿染亭 ] -화순(和順)

전라남도 화순군의 경승지인 ‘화순 적벽(和順赤壁, 전라남도기념물 제60호)’ 상류의 물염적벽을 조망할 수 있는 곳에 세워진 정자로, 화순군향토문화유산 제3호로 지정되어 있다. 조선 중종(재위 1506∼1544)과 명종(재위 1545∼1567) 때에 성균관전적 및 구례·풍기군수를 역임했던 물염 송정순(宋庭筍)이 건립하였고, 송정순의 호를 따서 물염정(勿染亭)이라 하였다. ‘물염’이란 ‘속세에 물들지 않겠다’는 의미이다. 송정순은 외손인 나무송(羅茂松), 나무춘(羅茂春) 형제에게 이 정자를 물려주었다 한다. 현재의 정자는 정면 3칸·측면 3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로 1966년과 1981년에 걸쳐 중수하고, 1996년 지붕을 교체하였다.

 

오의정[ 五宜亭 ]-산청(山淸)

산청 오의정(山淸 五宜亭)은 괴헌(槐軒) 민수(閔銖, 1784~1871)의 유지를 받들기 위해 손자 송암(松菴) 민동혁이 건립한 정자이다. 민수는 유학자로 임종을 앞두고 자손들이 공부할 서재를 건립하라는 유언으로 남겼다. 이에 다섯 아들들은 1872년에 삼천동三泉洞에 서재를 한 칸 건립한 것이 오의정의 시초이다. 정자의 이름은 다섯 형제들은 부친이 생전에 즐거움을 받들지 못한 죄송함으로 감히 오락이란 말을 쓸 수 없고 시경에 형에게도 착하게 하고 아우에게도 착하게 한다는 의형의제(宜兄宜弟)의 의(宜)자를 취하여 오의정이라 하였다. 1909년에 민수의 맏손자 민동혁이 현재의 자리로 이건하였다.정면 3칸, 측면 2칸 홑처마 팔작지붕이며 중층 누각이다

           
     
 

임청각[ 臨淸閣 ]-안동(安東)

경북 안동시 안동시 임청각길 53(법흥동)에 위치한 전통 한옥으로, 조선 중기인 1515년 형조 좌랑 이명(李洺)이 지었다.  임청각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이었던 석주(石洲) 이상룡(李相龍·1858∼1932) 선생의 생가이자 석주 선생을 비롯한 독립운동가 9명을 배출한 고성 이씨 가문의 종택으로 유명하다. 석주 선생은 경술국치 이듬해인 1911년 임청각을 비롯한 전 재산을 처분하고 만주로 망명해 신흥무관학교 설립 등 독립군 양성에 힘썼다. 당초 임청각은 안채, 중채, 사랑채, 사당, 행랑채 등을 갖춘 99칸의 기와집이었으나, 1942년 일제가 독립운동가의 정기를 끊어버리겠다며 임청각 마당 한가운데 중앙선 철길을 내고 50여 칸의 행랑채와 부속 건물을 강제로 철거했다. 그 결과 현재 철길과 고택이 붙어있는 모습으로 남게 되었다.

 

.영벽정[ 映碧亭 ]-화순(和順)

1984년 2월 29일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67호로 지정되었다. 영벽정이라는 이름은 계절에 따라 변하는 연주산(聯珠山)의 경치가 맑은 지석강물에 투영되어 운치 있게 바라볼 수 있다 하여 붙여진 것이다. 정자는 능주팔경의 하나로 연주산 밑 지석강의 상류 영벽강변(映碧江邊)에 있다. 건립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양팽손(梁彭孫) 등이 쓴 제영, 《신증동국여지승람》, 김종직(金宗直)의 시 등으로 볼 때 16세기 후반에 건립된 것으로 추측된다. 또한 능주목(군), 즉 관청이 주도하여 건립한 것으로 추정된다. 1632년(인조 10) 목사 정윤이 아전들의 휴식처로 개수하였으며, 1872년(고종 9)에 화재로 소실되었는데 이듬해 목사 한치조(韓致肇)가 중건하였다. 이후 보수를 거듭해오다가 1982년, 1983년에 각각 보수하였으며 1988년에 해체, 복원하였다.

 

영호루[ 映湖樓 ]- -안동(安東)

연대는 알 수 없으나 고려시대 장군 김방경(金方慶, 1212~1300)이 1274년(원종 15) 일본 원정에서 돌아오는 길에 영호루에 들러 지은 시가 전하는 것으로 보아 그 이전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그후 홍건적의 난 때 공민왕이 이곳에서 군사를 지휘했다고 하며 1367년 공민왕이 내린 현판을 걸기 위해 확장, 중수하였다. 여러 차례의 홍수로 유실된 것을 수차례 복원하였으며, 1970년에 옛 영호루 자리의 강 건너편인 현재 위치에 철근콘크리트로 새로 지었다. 북쪽 면 처마 밑에는 공민왕의 친필 현판이 걸려 있으며 남쪽 면에는 박정희 대통령이 쓴 현판이 걸려 있다. 내부에는 안동부사로 있던 김학순(金學淳)이 1820년 영호루를 중수하면서 쓴 낙동상류 영남명루(洛東上流嶺南名樓)라는 현판을 비롯하여 시판 12점, 제영 1점, 현판 2점이 걸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