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균관[ 成均館 ]-서울

인재양성을 위한 최고학부의 기원은 중국 주대(周代)에 천자의 도읍에 설립한 벽옹(辟雍)과 제후(諸侯)의 도읍에 설립한 반궁(泮宮)의 제도에서 찾을 수 있지만, 우리 나라에서는 고려시대의 국자감(國子監), 신라시대의 국학(國學), 그리고 멀리는 고구려의 태학(太學)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우리 나라 최고학부의 명칭으로 ‘성균(成均)’이라는 말이 처음 사용된 것은 1298년(충렬왕 24)에 국학(국자감을 개칭한 것)을 성균감(成均監)이라 개칭한 데서 비롯된다. 그 뒤 1308년에 충렬왕이 죽고 충선왕이 즉위하면서 성균감을 성균관이라 개칭하였다.

 

전주향교[ 全州鄕校 ] -전주(全州)

1992년 12월 23일 사적 제379호로 지정되었으며, 면적은 1만 357㎡이다. 본래 1410년(태종 10) 완산구 풍남동(豊南洞)에 있는 경기전(慶基殿) 부근에 지었으나 1603년(선조 36) 관찰사 장만(張晩)이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대성전(大成殿) ·명륜당 등 16동의 건물이 있으며, 전국 향교 중 유일하게 공자 ·맹자 ·증자 ·안자의 아버지 위패를 봉안한 계성사(啓聖祠)가 있고, 대성전 ·동무(東廡) ·서무(西廡)에 51선현의 위패가 봉안되었다. 또 장판각(藏板閣)에는 《주자대전》 《성리대전》 《사기평림(史記評林)》 등 9,600여 점의 목판이 소장되어 있다.

 

음성향교[ 陰城鄕校 ]-음성(陰城)

음성향교는 1560년(명종 15)에 창건되었다. 1651년(효종 2) 명륜당(明倫堂)을 중수한 이래로, 1870년(고종 7)과 1887년(고종 24) 2차례에 걸쳐 중수와 보수가 있었다. 1979년 내삼문과 명륜당을 보수하였고, 막돌담장을 신설하여 오늘에 이른다.향교의 건물구조는 후묘전당으로, 안담장에 내삼문을 두어 구획하고 있다. 문묘에는 대성전(大成殿)과 명륜당·동재(東齋)와 서재(西齋)·고직사(庫直舍) 등의 부속건물이 있다. 동재와 서재가 명륜당의 뒤뜰 양편에 있는 것이 특이한데, 이것은 원래의 배치가 아니라 국도(國道) 건설공사 때문에 위치가 변경된 것으로 보인다.  

           
 

 

 

 

청도향교[ 淸道鄕校 ] -청도(淸道)

1985년 10월 15일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07호로 지정되었다. 화양향교(華陽鄕校)라고도 불린다. 1568년(선조 1)에 군수 이선경이 고평동에 세웠다가 1626년(인조 4)에 합천동으로 옮겼으며, 1734년(영조 10)에 화양읍 교촌리로 다시 이전하였다.대성전과 동·서무, 내삼문, 명륜당, 동·서재, 사락루(思樂樓) 등 8동의 건물이 있다. 일반적으로 제사기능을 담당하는 대성전과 강학기능의 명륜당을 앞뒤로 나란히 배치하였는데, 이곳은 두 건물이 좌우에 배치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대성전은 맞배지붕에 정면 3칸, 측면 2칸 건물이며 기둥머리에 물익공을 짜고 장식이 없는 네모판의 화반(花盤) 등 검소한 모습이다.

 

초계향교[ 草溪鄕校 ] -합천(陜川)

1628년(인조 6)에 창건된 향교로 초계면 서쪽 끝에 위치하며, 주변에 대나무 숲과 민가가 인접해 있다. 1800년대 초에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으며, 1819년에 대성전(大成殿)을 중수하고, 1843년에 명륜당(明倫堂)을 중수한 사실이 전할 뿐 그 밖의 자세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1993년에 동재(東齋)·서재(西齋)를 건립하였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성전·동무·서무·내삼문(內三門)·명륜당·풍화루(風化樓) 등이고, 앞에는 강학(講學)을 하는 명륜당을 두고 뒤에 성현(聖賢)을 봉사하는 대성전을 둔 조선시대의 전형적인 전학후묘(前學後廟) 형태이다.

 

울진향교[ 蔚珍鄕校 ]-울진(蔚珍)

1484년(성종 15)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월변동(月邊洞)에 창건되었다. 1697년(숙종 23)고성리 성저동으로 이건하였다가, 1872년(고종 9)에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다. 1878년에 군수 최형직(崔炯稷)과 유림의 노력으로 대성전을 중수하였다. 1950년 6·25동란으로 대성전과 동재(東齋)를 제외한 명륜당·서재(西齋) 등 부속건물이 모두 소실되었으며, 1970년과 1976년에 담장과 주사(厨舍)를 보수하고 1980년 명륜당을 중창하였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8칸의 대성전, 7칸의 명륜당, 5칸의 동재, 3칸의 주사, 2칸의 제기고(祭器庫), 내삼문(內三門) 등이 있다.

           
 

 

 
 

평창향교[ 平昌鄕校 ] -평창(平昌)

향교재단이 소유하고 있다. 1658년(효종 9) 평창군수 최창민(崔昌敏)과 향유(鄕儒)들이 창건하였으며 1729년(영조 5)에 중수하였고, 6·25전쟁으로 소실되었다가 1953년 7월 중수하였다. 대성전(大成殿) 앞에 내삼문(內三門)이 있고, 그 앞에 외문(外門)에 해당하는 풍화루(風化樓)가 있다. 대성전은 정면 3칸, 측면 1.5칸의 맞배지붕집으로 장대석 기단 위에 기둥을 세웠다. 출입문 중앙칸은 좌우에 비하여 좁으며 2분합(分閤)의 궁판이 있는 띠살문을 두었고, 좌우측 칸에는 중앙 쪽으로 띠살문을, 바깥쪽으로는 겹친넉살무늬의 광창(光窓)을 설치하였다. 천장은 연등천장이며 5량 구조이다.

 

춘천향교[ 春川鄕校 ]-춘천(春川)

조선 초기에 창설된 교육기관이다. 창건연대는 정확하지 않으나 유몽인(柳夢寅)의 《어우집(於于集)》에 1520년(중종 15)에 다시 지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이전에 건립되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선조 때 중건하였으며, 인조 때와 영조 때 다시 중수하였으나 6·25전쟁 때 파괴되어 1960년에 재건하였다. 전형적인 향교의 배치양식인 전학후묘를 취하고 있다. 제사공간은 뒤쪽에 두어 대성전과 동무와 서무를 설치하였고 교육공간은 앞쪽에 두어 명륜당과 유생들의 기숙사였던 동재와 서재 및 장수루(藏修樓)를 설치하였다.

 

제주향교[ 濟州鄕校 ] -제주(濟州)

1971년 8월 26일 제주특별자치도 유형문화재 제2호로 지정되었으며, 제주향교 대성전은 2016년 6월 13일 보물 제1902호로 지정되었다. 향교재단에서 소유하고 있다. 제주민을 교육·교화하고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배향하기 위하여 1392년(태조 원년) 제주성 교동(校洞)에 창건하였다. 그뒤 1435년(세종 17) 안무사 최해산(崔海山)이 중건하였고 1466년(세조 12) 절제사 이유의(李由義)가 중수하였으며, 1536년(중종 31) 목사 심연원(沈連源)이 명륜당을 개축하고 향학당을 건립하였다. 1582년(선조 15)에는 목사 김태정(金泰廷)이 가락천(嘉樂泉) 동쪽의 고령전(古齡田)으로 이전하였다.

           
   

 
 

함양향교[ 咸陽鄕校 ] -함양(咸陽)

1983년 8월 12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25호로 지정되었다. 향교재단이 소유하고 있다. 언제 초창되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함양에 있던 고려시대의 소소당(昭所堂)이 변한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 후기 두문동칠십이현(杜門洞七十二賢)의 한 사람인 조승숙(趙承肅)의 ‘명륜당기(明倫堂記)’에 따르면, 1398년(태조 7) 무렵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뒤 지금의 위치로 이건하였고 선조 때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다가 대성전(大成殿)을 중수하고 동재(東齋), 서재(西齋), 문루(門樓)를 건립하였다.경내에는 문묘(文廟), 대성전, 명륜당, 동재, 서재, 문루인 태극루(太極樓), 전직사(殿直舍), 고직사(庫直舍) 등 10동(棟)의 건물이 있다.

 

통영향교[ 統營鄕校 ] -통영(統營)

1983년 8월 6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18호로 지정되었다. 1901년 지방민의 교화와 교육을 위하여 이 고장 유림들에 의해 창건되었다. 1900년(광무 4) 이 지역이 고성현(固城縣)에서 분리되어 진남군(鎭南郡)으로 독립하자 고성향교(固城鄕校)에서 분리하여 창건하였다. 죽림마을의 평지에 세워진 이 향교는 대성전(大成殿)·동무·서무·명륜당(明倫堂)·동재(東齋)·서재(西齋)·풍화루(風化樓)·제기고(祭器庫)·내삼문(內三門)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건물배치 형식은 전형적인 조선시대 향교의 배치형식을 따라 명륜당과 동·서재를 앞에 두고 그 뒤에 내삼문 담장으로 구획하여 대성전과 동·서무를 두는 전학후묘(前學後廟)의 형식을 취하였다..

 

.칠원향교[ 漆原鄕校 ] -칠원(漆原)

칠원읍지(漆原邑誌)에 따르면 현(縣)의 서쪽에 있던 건물을 1621년(광해군 13)에 현의 동쪽 삼리허(三里許)에 이건(移建)했다가 1700년(숙종 26) 현의 서쪽인 지금의 자리에 다시 이건했다고 기록하고 있으나 당시의 건물구조 및 규모는 알 수 없다. 1906년(광무 10) 칠원군이 함안군에 통합됨에 따라 칠원향교도 함안향교에 병합되었던 것을 1961년 칠원 유림들이 뜻을 모아 중수복원(重修復原)하였다. 현재 해마다 8월 27일 대성전에서 공자를 비롯한 중국 성현 7위와 한국 성현 18위를 모시고 제사를 지낸다. 이 향교는 외삼문(外三門), 명륜당(明倫堂), 내삼문(內三門), 대성전이 일렬로 배치되어 있다.

           
     
 

화순향교[ 和順鄕校 ] -화순(和順)

1433(세종 15)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정유재란 때 회신(灰燼)된 것을 1611년(광해군 3) 현감 이인부(李仁傅)가 중수하였다. 1647년(인조 25) 현감 홍명하(洪命夏)가 중수하고 1848년(헌종 14)과 1917·1976년에 보수하였다.현존하는 건물로는 5칸의 대성전을 비롯하여 동무(東廡)·서무(西廡)·명륜당·동재(東齋)·서재(西齋)·만화루(萬化樓)·고직사(庫直舍) 등이 있다. 대성전에는 5성(五聖), 송조4현(宋朝四賢), 우리 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건축형태는 전면에 명륜당을, 후면에 대성전을 둔 전학후묘(前學後廟)의 형태이다.

 

능주향교[ 綾州鄕校 ]-화순(和順)

 이 향교는 조선시대인 1392년(태조 1)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을 위하여 창건되었다. 그후 임진왜란으로 불타 없어졌다가 1600년에 현령 하응도(河應圖)가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였다. 1611년 현령 윤수(尹燧)가 동무·서무를 중건하고 1724년에 중수하였으며 1775년에 목사 이광도(李廣度)를 중심으로 지방 유림이 중수를 거듭하였다. 그 뒤에도 수차례 중수하였다. 대성전과 동무·서무에는 공자를 비롯한 5성(聖), 공문(孔門) 10(哲), 송조(宋朝) 6현(賢), 우리나라 18현 등 모두 39위패를 모시고 매년 봄과 가을에 제사를 지낸다.

 

함평향교[ 咸平鄕校 ]-함평 咸平)

1985년 2월 25일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13호로 지정되었다. 함평향교의 창건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조선시대인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 때 병화(兵火)로 소실되었다는 기록이 의병으로 활약했던 노경덕의 행장에 전해진다. 원래는 함평읍 내교리 외대화(外大化) 동쪽에 있었다고 하며 현재 외대화 마을 동쪽 산에 향교의 잔해로 보이는 주초석과 기와편들이 남아 있다. 그뒤 1599년에 초가로 재건되었고, 1625(인조 3) 현감 박정청(朴炡淸)이 십정지지(十井之地)라 하여 현재의 자리에 터를 잡아 중건하려 했으나 정묘호란으로 중단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