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버른 왕립 전시장 [Royal Exhibition Building]

 

멜버른 왕립 전시장은 빅토리아 시대의 낙천주의와 기업가 정신에 바치는 기념비라 할 수 있다. 1880년 멜버른 국제 박람회에 맞춰 세워진 이 건물은 확장을 거듭하고 있던 대영제국의 일부로서 빅토리아 여왕의 중요한 식민지를 세계무대에 알리려는 의도로 건립되었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의 국제 박람회 운동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 큰 오픈 플랜(open plan, 다양한 용도를 위해 칸막이를 최소한으로 줄인 평면 설계)의 전통을 따랐으며, 이러한 설계가 오늘날까지 그대로 남아 있는 세계에서 몇 안 되는 건물 중의 하나이다.

 

캔버라 구 국회의사당 [Old Parliament House, Canberra]

 

인공호인 벌리그리핀호 남쪽, 공원과 거리 사이의 의회 삼각지대에 위치해 있다. 수도가 멜버른에서 캔버라로 옮겨오면서 1923년 임시국회의사당으로 공사를 시작하여 1927년 완공되었다. 존 스미스 머독팀이 1920~1930년대 캔버라 청사 건물에 흔히 적용되던 고전양식으로 설계했으며 캔버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로 손꼽힌다. 1988년 캐피털 힐에 신국회의사당이 새로 건설되어 옮겨간 후 건물 보존 여부에 관해 의견이 분분했다. 이후 20세기 오스트레일리아 역사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판단해 보존하기로 결정되었으나 용도에 관해서는 확실히 정하지 않았다.

 

퍼스 조폐국 [Perth Mint]

 

서(西)오스트레일리아가 아직 영국 식민지이던 시절, 소브린 금화와 반 소브린 금화는 런던의 왕립 조폐국에서 제작되었다. 퍼스 조폐국은 1889년에 문을 열었으며, 1931년 소브린 금화의 통용이 중단되기까지 1억 6백만 개 이상의 소브린 금화와 거의 73만 5천 개의 반 소브린 금화를 쏟아냈다. 1940년 조폐국에서는 오스트리아의 은화와 동화를 생산하기 시작했으며, 1966년 도입된 십진법에 따른 화폐들도 만들어 냈는데 생산이 결국 중단된 것은 1973년이었다. 이상하게도 조폐국은 계속 영국 소유로 남아 있다가 1970년에서야 서오스트레일리아 정부로 넘어갔다.

 
             
 

     
 

오스트레일리아 국립 전쟁 기념관 [Australian National War

Memorial]

조국을 위해 싸우다 전사한 군인들을 위한 오스트레일리아의 국가 기념관은 수도인 캔버라에 있다. 전쟁 기념관은 또한 국립 군사 역사박물관이기도 하다. 이후에 오스트레일리아의 제1차 세계대전 역사 편찬자가 되는 찰스 빈이, 1916년 프랑스에서 싸우는 오스트레일리아 군인들을 주시하고 있던 중에 기념관에 대한 착상을 떠올렸다. 독일을 상대로 한 전쟁에서 오스트레일리아는 영국과 연합했으며, 1915년 터키의 갈리폴리 전투 때 오스트레일리아 군대에서는 많은 사상자가 나왔다. 기념관에 가려면 오스트레일리아가 참전했던 모든 전쟁에 바쳐진 추모비들이 늘어서 있다.

 

플린더즈 스트리트 역 [Flinders Street Station]

 

플린더즈 스트리트 역은 멜버른의 통근 교통의 메인 허브로, 지상으로 다니는 전철과 지하철 메트로폴리탄 노선이 만나는 곳이다. 1899년 늘어나는 공공 교통의 수요를 충족시킬 새 역사를 짓기 위한 설계 공모전이 열렸을 때, 철도 노동자였던 제임스 W. 포셋(1863~1934년)과 헨리 P. C. 애쉬워스(1871년경~1903년)는 이 부유한 빅토리아 시대 도시의 웅장한 현관이 될 화려한 설계를 내놓아 우승하였다. 야라 강변 프린시스 다리 바로 옆의 분주한 시내 교차로에 위치한 이 건물은 도저히 놓치고 지나칠 수가 없는 건물이다. 그 현란한 색채와 건축적 선은 주변의 건물과 대조적이다.

 

브로큰힐 [Broken Hill]

뉴사우스웨일즈 주의 광활하고 붉은 미개척 황야를 가로질러 차를 달리다 보면 먼 곳에서 거대한 광재 더미가 모습을 드러낸다. 브로큰힐은 북동쪽에 있다. 브로큰힐로 진입하는 길은 매혹적이지는 않지만, 이 도시는 여러 해 동안 오스트레일리아에서 가장 크고 번영했던 광산 도시 중 하나였기에 그 기원에 걸맞은 풍경이라 할수 있다. 브로큰힐은 1883년 독일 태생의 국경 지방 목동 찰스 래습이 주석이 묻혔다고 믿던 '부러진 언덕'(broken hill)의 16헥타르 넓이의 땅을 임대로 얻었을 때 세워졌다. 사실 이 언덕은 '광맥선'으로, 7㎞에 걸쳐 납, 은, 아연 광석이 띠를 이루며 묻혀 있었다.

 
             
       
 

보타니 베이 [Botany Bay]

 

1776년 5월 6일의 항해 일지에 영국 탐험가 제임스 쿡 선장은 이렇게 썼다. "이 지역에서는 이런 종류의 물고기가 굉장히 많이 발견되기 때문에 나는 이곳에 '스팅레이즈 하버'(가오리 항구)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후 이 항해 일지를 바탕삼아 일기를 쓰면서, 그는 마음을 바꿨다. "이 지역에서는 … 식물이 굉장히 많이 발견되기 때문에 나는 이곳에 '보타니 베이'(식물의 만(灣))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쿡 선장이 오스트레일리아에 첫발을 내디뎠으며, 18년 후 아서 필립 선장이 제1함대를 이끌고 유형지를 찾으러 떠났던 장소를 우리는 바로 '보타니 베이'라는 이 이름으로 알고 있다.

 

크라이스트처치 대성당 [Christchurch Cathedral]

 

크라이스트처치의 상징적인 건물로 영국 고딕양식으로 지어졌다. 1864년에 건축이 시작되었지만, 40년 만인 1904년에 완성되었다.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된 내부에는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증정한 세례쟁반이 있고, 훌륭한 조각이 되어 있는 설교단은 뉴질랜드 최초의 주교에게 헌정된 것이다. 종루에는 13개의 종이 달려 있는데 런던의 세인트폴 사원의 종을 본떠서 만든 것이라고 한다. 종루 첨탑의 높이는 63m이고, 첨탑을 따라 올라가는 중에 전망대가 있다.

 

캔터베리대성당 [Canterbury Cathedral]

 

중세기에는 영국의 정신적 중심지였다. 최초의 성당은 1070∼1089년 세워진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축이었다. 그 후 여러 번 증 ·수축하여 동서(東西)에 제실(祭室) ·익랑(翼廊) ·수도원과 도서관이 있는 현재의 이중 본전식(二重本殿式) 대성당이 되었다. 1174년 화재 후 프랑스인 윌리엄 오브 센즈에 의해 일부 증축되어 프랑스 번성기의 고딕양식이 도입되었다. 계속 영국인 건축가 윌리엄 및 존 복스, 헨리 예벨레 등에 의하여 건조된 부분에는 영국 특유의 퍼펜디큘라 양식이 보인다.

 
             
       
 

구 정부 청사 [Old Government Buildings]

 

19세기 말 뉴질랜드는 번영하는 대영제국의 자치령이었다. 1876년 구 주정부 청사를 없애기로 한 뉴질랜드 정부는 행정부와 입법부를 한꺼번에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정부 청사 설계를 의뢰했다. 콘크리트나 목재로 지은 르네상스 복고 양식의 설계안들이 나왔다. 뉴질랜드의 풍부한 삼림을 감안하면 목재를 사용했을 경우의 견적이 훨씬 가격 면에서 매력적이었다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당시 뉴질랜드에서 목재는 가장 흔히 사용하는 건축 자재였다. 총 143실의 구조는 이러한 형태의 목조 건물로는 세계 최대 규모였다. 스타일 면에서는 보수적이었지만 표현은 생동감이 넘쳤다.

 

올드 세인트폴 교회 [Old St Paul's Church]

 

영국 국교회 성당을 짓는 작업은 웰링턴이 뉴질랜드의 수도가 된 이듬해인 1865년에 시작되었다. 이 교회는 1866년에 축성 받았으나, 19세기 말이 되자 벌써 신도수에 비해 너무 작아졌다. 결국 1954년 새로운 성당을 짓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세인트 폴 성당의 교회법적인 기능이 1964년 새로 지어진 성당으로 옮겨지면서, 오래된 성당의 미래는 걱정거리가 되었다. 오랜 논의를 거쳐 오래된 세인트 폴 대성당은 헐릴 운명에서 벗어나 1967년 정부에 매각되었다. 건물의 구조는  이 지역 고유의 목재들로만 이루어졌다.

 

웰링턴시립미술관 [City Gallery Wellington]

 

1980년 개관하였다. 1993년 웨이크필드 스트리트의 시빅 스퀘어 북동쪽에 있는 현재 건물로 이전했다. 상설 전시는 하지 않으며 그 대신에 세계적 수준의 전시 프로그램과 뉴질랜드의 특성을 보여주는 예술 관련 프로젝트를 꾸준하게 펼친다. 현재 건물에는 이전에 웰링턴 공립도서관이 자리 잡고 있다가 1991년에 새로 지은 이웃 건물로 이전해 갔다. 건물은 1893년에 붉은색 벽돌로 지었는데, 1935년 거머&포드 건축회사가 아르데코풍의 2층 강화 콘크리트 골조 건물로 다시 짓기 시작하여 1940년 완공하였다. 면적은 3,900㎡이다.2009년 대대적인 공사를 통해 새로운 전시실을 조성했다.

 
             
         
 

뉴질랜드 국회의사당 [New Zealand Parliament Buildings]

 

원기둥 형태의 독특한 외관이 돋보이는 국회의사당은 현지에서 흔히 벌집(Bee hive)이라고 불린다. 365일 개방되어 있으며 무료로 진행되는 국회의사당 투어에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의사당 외관이 수많은 창으로 되어 있는데, 그 모습이 마치 벌집을 연상시킨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다. 국회의사당 내부 가이드 투어(무료)가 매일 운영된다. 가이드의 해설을 들으면서 의사당 안의 주요 시설과 멋진 인테리어를 돌아보는 투어이며 약 1시간 소요된다. 뉴질랜드의 정치적인 유산을 체험할 수 있는 국회의사당 투어와 더불어, 길 건너편에 있는 구 정부 청사도 함께 둘러볼 만하다.

 

사우스 캔터베리 박물관 [South Canterbury Museum]

 

.사우스 캔터베리 박물관은 뉴질랜드 남섬[南島] 캔터베리 지방자치지역의 항구 도시 티마루에 있는 박물관이다. 캔터베리 지역의 역사에 관한 자료를 주로 전시한다. 사우스 캔터베리 박물관은 지역 역사 보존을 목적으로 사우스 캔터베리 역사 협회가 주도해 1941년 처음 문을 열었다. 박물관의 전시공간은 크게 다섯 곳으로 나뉜다. 자연사 전시실에는 캔터베리 지역에 사는 포유류와 조류의 사진 및 박제, 나비와 사슴벌레 등 곤충에 관한 자료가 전시된다. 마오리 전시실에는 캔터베리 지역에서 800년 이상 거주한 원주민 마오리 족에 관한 자료가 보관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