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나크 신전 [Karnak Temples]

 

카르나크 신전은 이집트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신전이다. 룩소르 신전 북쪽 3km에 자리한다. 기원전 1990년부터 건립을 시작하였다. 아메넴헤트 1세가 착공한 이후 후대 파라오들에 의해 여러 차례 개축되었다. 잦은 도굴과 지형적 문제 때문에 현재 상당 부분 훼손되었다. 전체의 10% 정도만 발굴된 상태라고 한다. 기원전 2065~1781년 중왕국 시대부터 기원전 1550~1075년 신왕국,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를 거쳐 만들어진 신전과 탑, 오벨리스크 등을 만나볼 수 있다. 제19왕조 람세스 1세가 세운 대열주실, 제18왕조 투트모세 1세와 하트셉수트의 오벨리스크, 투트모세 3세 신전이 가장 유명하다.

 

룩소르 [Luxor]

 

카이로에서 남쪽으로 660여 km 떨어진 나일강 동안에 있다. 고대 이집트 신왕국시대의 수도 테베의 남쪽 교외에 해당하는데, 룩소르신전·카르낙신전을 비롯하여 대안에는 왕가의 계곡이 있다. 유명한 룩소르신전은 제18왕조의 아멘호테프 3세가 건립하고, 제19왕조의 람세스 2세가 증축한 것으로 나일강을 따라 북쪽으로부터 대탑문, 람세스 2세의 큰 안마당, 제2탑문, 아멘호테프 3세의 열주랑과 안마당·다주실·내진으로 이어진다. 대탑문 앞에는 람세스 2세의 오벨리스크가 한 쌍 있었으나, 북쪽의 것은 현재 파리의 콩코르드 광장에 옮겨져 있다.

 

오벨리스크 [obelisk]

 

방첨탑(方尖塔)이라고도 한다. 하나의 거대한 석재로 만들며 단면은 사각형이고 위로 올라갈수록 가늘어져 끝은 피라미드꼴이다. 태양신 신앙과 관계가 있고, 고왕국(古王國)시대에 아브시르에 있는 제5왕조의 네우세르라 왕묘의 태양피라미드 신전 등에서 보는 바와 같이 분묘의 기념비로 건립되었다. 중(中)왕국시대 이후로는, 국왕의 통치 기념제 때에 신전탑문 앞에 한쌍이 건립되었다.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것은 헬리오폴리스(태양의 도시라는 뜻)에 있는, 제12왕조의 세누세르 1세가 건립한 것으로 높이 20.7 m이다. 아스완의 채석장에는 길이 41.7 m의 미완성 오벨리스크가 하나 있다.

 
             
   

   
 

하토르 신전 [Temple of Hathor]

 

기원전 323년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죽은 후, 제국은 분할되었으며 이집트는 그가 거느렸던 마케도니아 장군 중 하나인 프톨레마이오스가 다스렸다. 그의 후계자들은 로마 시대까지 이집트를 통치하게 된다. 그러나 덴데라에 있는 무덤은 이 시기보다 훨씬 더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암소를 포함한 신성한 동물도 매장되었다. 하토르 여신이 취했던 형상 중 하나가 바로 암소였다. 그녀는 모든 어린 파라오에게 젖을 주었으며 종종 소의 귀가 달리고 두 개의 뿔 사이에 태양의 원반으로 치장된 왕관을 쓴 여인으로 묘사된다.

 

 

이집트 박물관 [Egyptian Museum]

 

이집트 박물관은 카이로를 넘어 이집트 최대의 박물관으로 꼽힌다. 투탕카멘의 황금관을 비롯한 각종 국보급 보물이 전시된 것으로 유명하다. 카이로의 대표 관광 명소 중 하나이며, 전 세계에서 몰려든 방문객으로 늘 붐빈다. 소장 자료만 약 10만 점에 다다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5300~3500년 전 유물도 만나볼 수 있다. 전시품을 천천히 둘러보는데 적어도 하루 이상이 걸린다. 케디브 아바스 헬미 2세 치하 1897년 착공하여 1902년 11월 15일 개관하였다. 전시실 개수는 107개이며 1층에는 연도별 조각상이, 2층에는 각종 보석과 진귀한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카렌 블릭센 박물관 [Karen Blixen Museum]

 

룽스테드의 작은 마을에는 뛰어난 이야기꾼이자 소설가였던 카렌 블릭센의 생애와 그녀가 살았던 시절을 알려 주는 카렌 블릭센 박물관이 있다. 이 박물관은 카렌 블릭센이 가족과 함께 살았던 집에 있으며, 방문하는 이들이 그녀를 둘러싼 사회적이며 문화적 환경을 통해 용감하고 씩씩한 그녀의 성격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해 준다. 카렌 블릭센(1885~1962)은, 여성이 여행하는 일이 매우 드물었던 시대에 지구 곳곳을 여행했다. 1905년 덴마크 잡지에 그녀가 쓴 최초의 글이 발표되었으며, 1914년 그녀는 스웨덴인 사촌 브로어 블릭센 피네케 남작과 결혼하여 케냐로 이주했다.

 
             
       
 

포트 지저스 [Fort Jesus]

 

15세기에 동아프리카의 항구들은 중국 황제와 공식적인 관계를 맺어 이익을 누렸다. 1498년 바스쿠 다 가마가 인도로 가는 항로를 개척해 신기원을 이룬 후, 포르투갈인의 관심은 상당한 이윤을 남길 수 있는 인도양 횡단 무역에 쏠렸으며, 16세기에 포르투갈인들은 동아프리카 해안을 무력으로 지배하게 되었다. 한때는 인도양에 있는 주요 항구였던 몸바사는 1505년 포르투갈인들의 손에 떨어졌으며, 1580년대 투르크의 공격 이후 그들은 항구와 도시를 보호하기 위해 '포트 지저스'를 세웠다. 이탈리아 건축가 조앙 바티스타 카이라투가 요새를 설계했다.

 

성 미카엘 교회 [Church of St. Michael]

 

류블랴나 남서쪽으로 그리 오래가지 않아 바르예(barje)라 불리는 습지대에 요제 플레크닉(1872~1957년)은 사제였던 조카의 부탁을 받고 성 미카엘 교회를 짓는다. 원래는 임시 건물로 쓰일 예정이었으나 예산이 부족해지는 바람에 그대로 쓰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플레크닉의 발명과 천재성은 독창적인 건물 안에 나무로 만든 아름다운 실내를 창조해냈다. 플레크닉은 표면을 다듬지 않은 돌로 건물 몸체를 짓고자 했다. 그러나 콘크리트를 아주 사용하지 않은 것은 아니고, 위층에는 벽돌과 돌과 함께 쓰였다.

 

 

난 마돌 [Nan Madol]

 

'태평양의 베네치아'는 난 마돌을 묘사하는 데 자주 사용되는 표현이다. 이는 정치적이고 문화적으로 풍부한 역사를 지닌 이 도시의 매력을 가리킨다. 난 마돌과 베네치아가 둘 다 복잡하게 얽힌 운하와 수로를 기반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이는 적당한 비유이다. 그러나 난 마돌은 베네치아와는 달리 그 역사가 겨우 서기 1세기나 2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갈 뿐이다. 게다가 난 마돌은 서로 교차하는 운하를 파내어 인공적으로 만든 여러 개의 작은 섬을 중심으로 세워졌지만, 베네치아는 천연적으로 형성된 지역에 세워졌다.

 

 
             
       
 

빅 홀 [Big Hole]

 

다이아몬드는 1860년대 이래로 호프타운 근처의 이 지역에서 농부들에 의해 채취되었으며, 1871년 드 비어라는 이름의 두 형제 소유였던 언덕에서 한 아프리카인이 83캐럿짜리 다이아몬드 견본을 발견하자, 이 지역에 대한 관심은 급부상했다. 이 도시의 원래 이름은 '뉴 러시'였으나, 1873년에 '킴벌리'라는 이름이 새로이 지어졌다. 언덕은 사라져 '빅 홀'이 되었다. 이는 남아프리카에서 가장 풍요로운 다이아몬드 광산이었다. 빅 홀은 곡괭이와 삽으로 판 세계 최대 크기의 구멍이다. 깊이가 215m, 구멍 둘레가 거의 1.6㎞에 달할 정도가 되었다.

 

유니언 빌딩 [Union Buildings]

 

1994년 남아프리카 최초의 민주주의 대통령인 넬슨 만델라의 취임식이 유니언 빌딩에서 열렸다는 사실은 한편으로는 아이러니컬하고 한편으로는 더없이 잘 들어맞는다. 유니언 빌딩의 건축가인 허버트 베이커 경이 살아 있었다면, 영구적인 공간의 창조는 정치적 견해의 전달보다 더 강력한 힘을 지녔다고 역설했을 것이다. 케이프 타운의 로즈 기념관과 요하네스버그에 지은 일련의 주택은 중요한 건물은 그 자리에 뿌리를 박아야 한다는 그의 믿음을 증명하고 있다. 돌과 자연, 그리고 공간의 상징의 상호작용에 대한 베이커의 열정은 유니언 빌딩에서도 구현되어 있다.

 

짐바브웨유적 [Zimbabwe]

 

1891년경부터 유럽인이 조사하였다. 학술적으로 중요한 연구대상일 뿐만 아니라 관광 자원으로서도 주목할 만한 건조물이다. 로디지아에서 보츠와나 및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걸친 화강암의 유적군은 100여 개가 넘지만 빅토리아 부근의 남동 약 27 km 지점에 있는 짐바브웨가 가장 대규모의 것이어서 유명하다. 약 2.5 m 높이의 돌담의 미로로 덮인 골짜기의 부분과 높이 9.8 m, 두께 약 5.2 m의 적석이 타원형으로 건조된 고대의 신전 등으로 되어 있다. 오늘날에는 9세기에서부터 17∼18세기에 걸쳐 아프리카인이 건설한 것으로 보고 있다.

 
             
 

 

     
 

시온의 성모 마리아 교회 [Church of St. Mary of Zion]

 

기독교는 매우 이른 시기에 현재 에티오피아가 된 땅의 북동쪽에 있는 악숨에 도달하였다. 4세기부터는 악숨의 에자나 왕 치하에서 국교가 되었는데, 그가 발행한 동전에는 기독교 십자가가 새겨져 있다. 에자나는 악숨에 아프리카에 최초였을 교회를 지었는데, 이는 몇 세기가 지나 1535년의 무슬림 공격으로 인해 파괴된 것으로 여겨진다. 이 교회의 돌로 된 제단은 예루살렘 근처에 있는 시온 산에서 왔다고 한다. 현재 '시온의 성모 마리아 고 (古)교회'라 불리는 건물은(여자는 들어갈 수 없다) 1665년에 예전의 교회 자리에 세워졌다. 이 교회는 에티오피아의 황제들이 대관식을 행하던 장소였다.

 

킬와 키시와니 유적 [Ruins of Kilwa Kisiwani]

 

아프리카 대륙의 동쪽, 적도 아래 위치한 국가 탄자니아의 세계유산이다. 유적은 탄자니아의 동쪽 해안 가까이에 위치한 작은 두 개의 섬인 킬와 키시와니 섬과 송고 음나라 섬에 있다. 이들 두 섬은 수도 다르에스살람의 남쪽에 자리 잡고 있다. 9세기 즈음부터 사람들이 거주하기 시작했다고 알려졌으며 수세기를 거치며 점차 영향력 있는 무역 중심지로 발전했다. 10세기에는 페르시아 사람들의 정착이 시작되었으며 12세기에는 아랍인들의 영향력이 크게 작용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이곳은 서서히 주요한 무역 도시로 성장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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