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 마리아 바실리카 [Basilica of St. Mary]

 

1343년, 튜튼 기사단의 기사단장인 바차우의 루돌프 쾨니히의 승인으로, 그다인스크에 새 교회를 짓기 위한 159년에 걸친 공사의 주춧돌이 놓였다. 1361년에 끝난 1단계 공정의 산물은 훗날 바실리카의 서쪽으로 흡수되는 단출한 구조물이었다. 1379년부터 1447년까지 대규모 증축이 이루어져서 트랜셉트와 사제단석, 그리고 종탑이 추가되었다. 외벽과 내부 볼트가 완성된 것은 1502년 3단계 공정에 이르러서였다. 성모 마리아 바실리카는 라틴십자가 모양의 평면도를 기초로, 길이가 105미터에 달하는 삼중 아일의 네이브와 너비 66미터의 트랜셉트로 이루어져 있다.

 

산 후안 데 울루아 [San Juan de Ulua]

 

산 후안 데 울루아는 베라크루스 시를 내려다보는 널찍한 요새이다. 이 요새는 스페인 통치 동안 멕시코에서 가장 중요한 항구였던 베라크루스를 지키기 위해 세워졌다. 멕시코 최초의 스페인 총독인 정복자 에르난 코르테스(1485~1547)가 1519년에 베라크루스를 건설했다. 이 항구는 매년 멕시코의 은광에서 캐낸 은을 싣기 위해 스페인 함대가 도착하는 곳이었고, 따라서 해적의 목표가 되기 십상이었다. 1565년부터, 근방의 섬인 산 후안 데 울루아에 요새가 건설되었다. 250대의 대포가 방비하고 해자와 흉벽, 1m 두께의 벽이 둘러쳐진 강력한 구조였다.

 

산토도밍고 성당 [Church of Santo Domingo]

 

마닐라에 위치하며, 필리핀에 있는 성당 중 가장 큰 규모이다. 현재 모습의 성당에 이르기까지 6번에 걸쳐 재건축되었다. 최초의 성당은 1587년 도미니크 수도회의 카톨릭 선교 본부로 건립된 것이었다. 그러나 얼마되지 않아 지진으로 무너졌고, 1592년 성당을 재건하면서는 성모마리아상을 세웠다. 이 성당도 화재로 소실되었으며, 1603년에 다시 건립된 성당도 지진으로 무너져내렸다. 이후 1862년 지어진 네 번째 성당은 영국군의 침략으로, 1887년 지어진 다섯 번째 성당은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의 공습으로 각각 파괴되었다. 지금의 성당은 1954년에 만들어진 것이다.

 
             
       
 

차풀테펙 성 [Chapultepec Castle]

 

차풀테펙 언덕 꼭대기에서 멕시코시티를 지켜보고 있는 차풀테펙 성은 12㎞ 길이로 곧게 뻗은 파세오 데 라 레포르마 거리 한쪽 끝에 자리 잡고 있다. 이 성은 숲과 호수, 기념관, 박물관으로 구성되었으며, 4세기경에 정착된 차풀테펙 공원을 이루는 일부이다. 자연적인 위치가 매우 좋은 이곳은 콜럼버스의 미 대륙 발견 이전, 현재의 성 전부터 계속해서 성이 지어지곤 했던 장소였다. 스페인 총독 베르나르도 데 갈베스가 1785년에 이 바로크 풍 성을 짓도록 명했다. 멕시코 독립전쟁(1810~1821)이 일어나는 바람에 성은 한동안 방치되어었다가 1833년 개조되어 사관학교로 문을 열었다.

 

치첸 이트사 천문대 [Observatory at Chichen Izta]

 

치첸 이트사는 멕시코의 유카탄 반도에 남아 있는 마야 유적 중에서 가장 보존 상태가 좋은 건축물 중 하나이다. 마야인들은 550년경 처음 치첸 이트사에 자리 잡았으나 이후 톨텍인들의 침략으로 추정되는 이유 때문에 이곳을 버리고 이주하였다. 1000년경에 마야인들은 다시 돌아왔으나 13세기에는 또다시 버려졌다. 치첸 이트사 천문대는 이 두 번째 시기에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22.5미터 높이의 치첸 이트사 천문대를 발견한 스페인 정복자들은 돔을 올린 중앙 탑의 원형 디자인과 나선형 계단을 보고 '달팽이'라는 뜻의 '엘 카라콜(El Caracol)'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오롱고 [Orongo Ceremonial Village]

 

오롱고 베이 홈스테드는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입지를 자랑한다. 베이오브아일랜즈의 오롱고 만의 맑은 초록색 아열대 바다를 내려다보는 아름다운 전망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1860년대에 나무로 지은 2층짜리 농가 주택으로 역사 유적 트러스트의 원조를 받아 완전히 재건되었다. 그 결과는 역사적인 중후함을 지닌 호텔로, 오스트리아 빈티지 그랜드 피아노부터 손으로 조각한 빅토리아 양식의 긴 의자, 목욕 가운이 걸려 있는 욕실, 폭신한 타월, 토착 식물로 만든 스킨케어 크림에 이르기까지 작은 디테일 하나하나에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공동 소유주인 크리스 스워넬과 마이클 후퍼는 둘 다 와인과 요식업 경력이 다.

 
             
   

   
 

티칼 [Tikal]

 

티칼은 고도로 발전한 예술, 건축, 문자, 달력, 천문학 체계로 고대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세련된 문화를 이룩했던 마야인들의 주요 도시 중심지였다. 마야 문명은 멕시코, 과테말라, 벨리즈에 걸쳐 널리 퍼져 있었으며, 이 지역의 '고전기'(서기 250~900년경)에 가장 융성했다. 티칼이 가진 정치적 중요성 또한 컸으며, 추측컨대 주변 지역을 지배했던 곳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의식을 거행하는 중요한 중심지였고 그 경계선 주변에는 주거지가 흩어져 있다. 의식을 거행하는 데 이곳이 중요해진 것은 기원전 300년에서 기원후 100년의 기간이었는데, 이때 다양한 신전과 피라미드가 세워졌다.

 

재규어 대사원 [Pyramid of the Great Jaguar]

 

티칼 국립공원에 서 있는 거대한 피라미드들은 고대 마야 문명의 가장 중요한 시기를 알려주는 유적 중의 하나이다. 현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공원은 열대우림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한때는 10만여 명의 인구가 거주하던 곳이다. 제1사원, 혹은 재규어 사원으로 알려진 이 피라미드는 티칼에서도 가장 유명한 피라미드로, 그 높이가 44미터에 달하며, 마야의 통치자였던 하사우 찬 카윌의 무덤이자 그가 같은 마야의 경쟁 부족을 상대로 거둔 승리의 기념비이기도 하다. 이 사원은 건축적 측면에서 매우 혁신적이라 할 수 있다.

 

엘 카스티요 [El Castillo]

엘 카스티요 요새는 니카라과의 산 후안 강 남쪽 강변에 위치하고 있다. 이 요새는 1673년에서 1675년까지 니카라과 호수와 란 후안 강이 만나는 곳에, 감시하고 이 지역에 대한 스페인 지배를 유지하기 위해 건설되었다. 서른두 대의 대포로 무장하고 있었으며 강 하류 쪽 먼 곳까지 감시하는 요새였다. 이러한 인공 방어벽에 더해, 요새 앞쪽의 강물에는 상어와 악어 떼가 우글거렸다. 엘 카스티요는 이 지역을 차지하려는 영국과 스페인 사이의 싸움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엘 카스티요 요새는 스페인 제국이 지녔던 과거의 권력과 영광을 보여 주고 있다.

 
             
       
 

내셔널 판테온 [National Pantheon]

 

카라카스에 있는 내셔널 판테온은 베네수엘라가 가장 숭배하는 건물 중 하나이다. 이전에는 교회였던 이곳은 1874년, 안토니오 구스만 블랑코 대통령이 카라카스 산티시마 트리니다드 교회를 영웅적인 동지들의 유골을 간직할 수 있는 장소로 변화시키라는 명을 내린 이후 내셔널 판테온이 되었다. 이곳에 잠들어 있는 이들 중 가장 숭배 받는 인물은 아마 시몬 볼리바르일 것이다. 1853년에서 1858년 사이, 호세 그레고리오 솔라노라는 엔지니어가 건축 첫 단계를 맡았으며 이후 완공되기까지 수십 년 동안 여러 다른 엔지니어들이 공헌했다.

 

산 프란시스코 교회 [Iglesia de San Francisco]

 

1950년대에 국가 기념물이 된 이 놀라운 교회는 베네수엘라에서 라틴아메리카 식민지풍 건축 양식을 가장 잘 보여 주는 예에 속한다. 이 교회는 1570년대에 설립된 산 프란시스코 수도원 옆에 세워졌다. 1887년 스톨렌 후안 만리크가 주도한 대규모 재건축에는 기둥을 교체하고, 성가대석을 바꾸고, 무데하르 양식의 패널 천장을 가짜 아치로 덮고, 메인 파사드의 일부는 고전주의, 일부는 바로크식 버전으로 다시 만드는 작업 등이 포함되었다. 스페인 식민 통치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 싸운 베네수엘라의 국민 영웅 시몬 볼리바르와 관계가 있는 사건들의 배경이 되어 왔다.

 

레티로 역 [Retiro Station]

 

20세기 초, 아르헨티나의 철도는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했다. 북부 노선 네트워크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있는 세 개의 터미널 중 하나인 에스타시온 레티로 페로카릴 센트럴 아르헨티노 역이 종점이었다. 에드워드 양식의 건축은 산업의 가능성과 바로크를 결합하였다. 이 특정한 경우는 시드니 폴렛(1883~1935년)이 에든버러 예술학교에서 받는 고전 건축 교육을 반영하고 있다. 폴렛이 퓨진 학생 메달을 수상한 후 폴렛과 줄곧 함께 일해왔던 에드윈 루텐스 경은 1911년, 레티로 역 프로젝트를 위해 유스터스 콘더(1863~1935년)에게 폴렛을 추천해 주었다

 
             
       
 

라 레콜레타 공동묘지 [La Recoleta Cemetery]

 

라 레콜레타라 알려진 지역은 원래 수도원 공동체(리콜레토스 데스칼소스)가 있던 곳이었는데, 이들은 여기에 1716년에는 수도원을, 1732년에는 바로크 풍 교회를 지었다. 오늘날 이곳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가장 부유한 이들이 사는 곳이다. 이 지역에 부유한 주민들이 모여 살게 된 것은, 1871년 황열병의 유행으로 주민들이 도시 남쪽을 버리고 북쪽으로 이사 오게 되면서부터였다. 그러나 라 레콜레타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유는 대통령에서 시인에 이르기까지, 변호사에서 레이싱 선수에 이르기까지, 아르헨티나의 가장 유명한 아들딸들의 유해가 안치된 공동묘지 덕택이다.

 

카사 로사다 [Casa Rosada]

 

카사 로사다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있는 건물로 "분홍빛의 저택"이라는 뜻이다. 공식적으로는 정부 청사 또는 대통령궁이라고 불리는 행정부의 중심 건물이다. 카사 로사다는 부에노스아이레스 5월 광장 동쪽에 있다. 현재의 건물은 1873년에 지어진 것으로 원래의 건물에 우체국과 성채가 보강됐다. 1998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아르헨티나를 방문했을 당시에는 외관에 대한 추가적인 보수 공사가 단행되었다. 전체적으로 건물빛은 밝은 분홍빛을 띠며 광장 쪽은 좀 더 진한 빛을 띤다. 현재는 대대적인 보수에 임하고 있으며 대개 색채 보수에 관한 경우가 많다.

 

.콜론 극장 [Teatro Colón]

 

부에노스 아이레스 최초의 오페라 하우스인 콜론 극장은 1889년 새로 시작된 공사가 끝나기까지 무려 20년 가까운 세월이 걸렸다. 벨기에 건축가인 쥘 도르말(1846~1924년)의 손에 완공되었다. 면적이 2,439제곱미터의 거대한 건물로, 그 위풍당당한 파사드는 창문, 기둥, 아치, 아키트레이브 등으로 장식된 세 개의 부분으로 조화롭게 나뉜다. 이 두 개 더 있는데, 말발굽 모양의 강당은 붉은색과 황금색으로 호화롭게 장식되어 있으며, 2,478개의 객석이 있고 500명이 입석할 수 있다. 가장 좁은 곳의 직경이 29.2미터, 가장 넓은 곳은 32.6미터이며 높이는 28미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