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퍼스 페리 [Harpers Ferry]

 

하퍼스 페리 국립 역사공원의 일부를 이루는 하퍼스 페리는 포토맥 강과 셰난도아 강 사이 골짜기, 세 개의 주가 만나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이 지역에 최초로 사람이 거주하게 된 것은 1734년경이었으나, 번영을 누리게 된 것은 1751년에 이르러서였다. 1751년에 기업가인 로버트 하퍼가 골짜기의 토지 한 구역을 사 들였고 그 이후 포토맥 강을 건너는 페리 서비스를 시작했다. 그 결과 정착민들이 이 지역에 접근할 수 있었고, 재빠르게 이주해 왔다. 1783년 이곳을 방문한 토머스 제퍼슨은 아름다운 자연과 풍부한 자원에 깊은 인상을 받았고, 1785년에는 조지 워싱턴이 이곳을 여행했다.

 

후버 댐 [Hoover Dam]

 

높이 221m. 기저부 너비 200m. 저수량 320억m3. 애리조나 ·네바다 양 주(州)에 걸쳐 있으며, 콜로라도강 중류의 그랜드캐니언 하류, 암석사막지대에 있다. 최대출력 135만kW의 발전, 임피리얼 계곡 방면으로의 관개, 콜로라도강 하류의 홍수 방지를 위해 건설된 것으로 테네시강(江) 유역 개발과 함께 뉴딜(New Deal) 정책의 일환으로 조성된 다목적 댐이다. 아치형 콘크리트 중력댐으로, 1936년에 완성되었으며, 당시에는 세계 제일의 규모를 자랑했을 뿐만 아니라 건설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을 촉진했다. 처음에는 ‘볼더댐’이라고 했으며, 부근에 댐 종사자 등이 거주하는 볼더시티가 건설되기도 했다.

 

캐니언 드 셰이 [Canyon de Chelly]

 

캐니언 드 셰이는 애리조나 주 북동쪽 모퉁이에 위치한 340㎢ 규모의 협곡으로, 숨 막힐 정도의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는 곳이다. 이곳은 북아메리카에서 가장 커다란 아메리카 원주민 보호구역인 나바호랜드의 일부로, 높이 솟은 사암 절벽과 웅장한 암석 기둥이 매혹적인 절경을 이룬다. 세 개의 인상적인 협곡은 천연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캐니언 드 셰이, 캐니언 델 무에르토, 모뉴먼트 캐니언으로, 이곳에는 놀라운 고대 유적이 풍부하다. 푸에블로 족의 조상인 아나사지 족은 4세기경 이 근방에 정착했는데, 이후 서로 다른 시대의 흔적인 100군데 이상의 고대 부락 유적이 발견되어 왔다.

 
             
       
 

이스턴 주립 교도소 [Eastern State Penitentiary]

 

전 세계에 걸쳐 대략 300개의 교도소가 이스턴 주립 교도소를 모델로 삼고 있다. 142년이라는 역사 동안, 은행 강도인 윌리 서턴과 알 카포네를 포함해 미국에서 가장 악명 높은 죄수들 이 이스턴 주립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이 교도소는 죄수들을 단순히 처벌하기보다 퀘이커 교도적인 '교정' 시스템에 기초하여, 자신들이 저지른 범죄를 반성하고 그 결과 행동을 고칠 수 있도록 독려하는 데에 목적을 두고 있었다. 죄수들의 교정을 위해서 독방에 수감했는데, 원칙적으로는 이렇게 하면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반성하는 데에 도움이 될 거라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핸콕 셰이커 교도 마을 [Hancock Shaker Village]

 

매사추세츠 주의 아름다운 시골 풍경 안에 깊숙이 자리한 작은 도시 핸콕. 이곳에 처음으로 거주자들이 생긴 것은 1767년 무렵이었다. 대략 1783년쯤 한 무리의 셰이커 교도가 이곳에 도착했으며, 점차 마을을 세워 나갔다. 셰이커교란 영국에서 기원하여 미국으로 전파된 독실하고 엄격한 프로테스탄트의 한 종파로, 이들은 1774년에 뉴욕에 상륙했다. 그곳에서 셰이커 교도들은 뉴욕 주를 거쳐 매사추세츠 주와 코네티컷 주로 퍼져나갔다. 핸콕 셰이커 교도 마을은 침체되기 전까지 약 한 세기 동안 번영을 누렸다. 1960년 셰이커교 중앙 지부에서 이 공동체를 닫기로 결정하고 건물과 토지를 팔았다.

 

알카트라즈 감옥 [Alcatraz Prison]

 

샌프란시스코 만 가운데에 '더 록'이라고도 불리는 알카트라즈가 솟아 있다. 스페인 탐험가인 후안 데 아얄라가 1775년에 이 자그마한 섬에 '라 이슬라 데 로스 알카트라세스', 즉 '가마우지의 섬'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메마르고 돌투성이인 이곳은 1850년대에 등대가 세워지기 전까지는 인적이 없었다. 그 무렵, 미국군대가 이 섬이 지닌 요새로서의 가치를 깨달았다. 곧 이 섬은 군사 요새가 되었으며, 나중에는 포로들을 수용하는 데에 사용되었다. 1933년 10월 12일, 미국 법무부가 군대로부터 이 섬을 인수했다. 그리고 1934년 8월, 건물은 악명 높고 잔혹한 연방 감옥이 되었다.

 
             
       
 

캐나다 국회의사당 [Parliament of Canada]

 

오타와 강이 내려다보이는 짙푸른 언덕, 팔러먼트 힐에 위치한 고풍스러운 건물이 바로 캐나다 국회의사당이다. 캐나다를 상징하는 랜드마크이며 최초로 지어진 건물은 1867년에 완성됐으나 화재로 소실되고, 1922년에 재건되어 현재 모습을 갖추었다. 오타와 강을 굽어보는 석회암 절벽 위에 청동 지붕을 인 고딕 양식의 웅장한 건물이 시선을 압도한다. 국회의사당은 이스트와 웨스트, 센터 등 세 블록으로 나뉜다. 센터 블록 중앙에는 높이 92.2m의 평화의 탑이 우뚝 서 있다. 전몰자를 추모하기 위해 세워진 이 탑에는 53개 종으로 이뤄진 연주 악기 카리용과 거대한 종이 달려 있다.

 

카사 로마 [Casa Loma]

 

중세 유럽의 고성을 연상케 하는 붉은색의 지붕과 벽돌로 이루어진 대저택이다. 나이아가라 폭포의 수력발전 사업으로 재산을 모은 헨리 펠랫(Henry Pellatt)이 건립했으며 토론토의 명물로 손꼽힌다. 건물은 1911~1914년에 지어졌으며 건설 당시 300명의 인원과 350만 달러의 비용이 들었다. 내부의 98개에 이르는 방은 각각 특색 있게 꾸며졌고, 도서관 규모의 서재, 온실 식물원, 지하 포도주 저장고 등이 있다. 실내는 호화스러운 가구와 장식으로 가득하며 방마다 당시의 최고급 드레스가 전시되어 있다. 건물 뒤편에는 잘 가꾸어진 숲과 장미정원이 있는데 여름에는 일반에 개방한다.

 

.시그널 힐 [Signal Hill]

 

시그널 힐 꼭대기의 카봇 타워 꼭대기에 서 보면, 왜 이곳이 세인트 존스에서 가장 눈에 띄는 이정표인지 확실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전략적으로 중요한 이 장소는 너비가 고작 207m인 항구 지형의 입구를 지키고 있으며 시야를 방해하는 것이라고는 없는 파노라마 같은 경관을 제공한다. 1704년부터, 이 꼭대기에서는 세인트 존스를 향하여 우호적이거나 혹은 적대적인 목적을 지닌 배들이 접근한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깃발 신호가 나부꼈다. 적대적일 경우가 더 많았는데, 네덜란드와 프랑스, 영국 군대 모두가 이 전략적인 지점을 노리고 경쟁했기 때문이다.

 
             
       
 

살바도르 [Salvador]

 

옛이름은 바이아이다. 브라질 제4의 대도시로, 시가지는 바이아 만구의 반도에 있으며, 만안의 저지대와 해발고도 70m에 이르는 구릉지대에 전개된다. 1549년 포르투갈 식민지의 수도로 건설되어 설탕 수출항으로서 발전했다. 항구를 중심으로 하는 저지대에는 항만시설을 비롯하여, 다수의 은행 ·상사 등의 고층건물이 늘어서 있고, 배후의 구릉지대에는 고급상점가 ·관청가 ·주택구역 등이 있으며, 두 지역은 케이블카로 연결되어 있다. 흑인과의 혼혈이 많으며, 바로크식 식민지풍의 성당과 민가 ·요새 등의 건물, 문화시설이 다양하여 관광객이 모여든다. 세계유산목록에 등록되어 있다.

 

아마조나스 [Amazonas]

 

브라질 ·페루 ·콜롬비아 ·베네수엘라 ·에콰도르 ·볼리비아 등지에 걸쳐 있는 열대우림에 뒤덮인 지역이다. 북위 2°~남위 10° 사이에 있으며 좁은 뜻에서는 아마존 분지만을 말한다. 브라질 영내에서 아마존강 유역 478만 8,000km2로 브라질 면적의 1/2을 차지한다. 산타렝 부근의 상류를 상(上)아마조니아, 하류를 하(下)아마조니아라고 한다. 상아마조니아는 아마존 분지라고도 하는데, 적도 바로 아래의 조밀한 열대우림지역으로 ‘녹색의 지옥’이라고도 한다. 아마존강의 그물코와 같은 본 ·지류에 의해서 ‘담수의 바다’라는 이름 그대로, 수로가  주요 교통 수단으로 이용된다.

 

사크사이와만 [Sacsayhuaman]

 

잉카인들의 이 과거 요새에 찾아와서 그 분위기와 역사, 건설하는 데 쓰인 거대한 돌들의 엄청난 규모에 깊은 인상을 받고 숙연해지지 않기란 불가능하다. 사크사이와만은 '배꼽'이라는 의미의 이름을 지닌 도시 쿠스코 가까이에 서 있다. 출입구 높이가 3m에 달하고 모퉁잇돌 높이가 8m에 달하는 사크사이와만은 그야말로 인간이 일구어 낸 위대한 공학적 업적이며, 건축에 관한 이야기는 고고학자들 사이에서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잦은 지진으로 인해 이 지역에 있는 많은 현대적 건물들이 무너졌지만, 놀랍게도 이 잉카 유적만은 어떠한 진동에도 흔들림 없이 남아 있었다.

 
             
       
 

카르타헤나 성벽 [Cartagena Walls]

 

카르타헤나 성벽은 카르타헤나 구시가지 서인도 제도로 가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으며, 카르타헤나 항구는 그 부유함과 경제적인 중요성 때문에 종종 해적의 습격을 받았고, 이에 도시를 지키기 위해 성벽을 쌓았다. 카르타헤나는 1533년 스페인 정복자 돈 페드로 데 에레디아에 의해 세워졌으며, 즉각적으로 해적들이 노리는 표적이 되었다. 이러한 일들이 벌어지자 스페인의 펠리페 2세는 도시를 방어할 수 있는 대규모 성채를 건설하라고 명했다. 벽의 높이가 27m에 달하며, 산 세바스티안 데 파스텔리요와 산 펠리페 데 바라하스를 비롯한 여러 개의 요새로 무장한 이 성채를 완전히 건설하기까지 200년이 걸렸다.

 

쿠바 대통령궁 [Presidential Palace]

 

웅장하고, 웨딩 케이크를 닮은 아바나 대통령궁의 하얀 건물은 1913년에서 1920년까지 건설되었다. 마리오 가르시아 메노칼부터 풀젠시오 바티스타에 이르기까지 쿠바의 대통령들이 거주하는 곳이었다. 1959년 혁명 이후, 이 궁전은 혁명 박물관이 되었다. 이곳에는 혁명의 역사와, 건강, 교육, 앙골라 전쟁 등 이후 혁명이 거둬낸 성과들과 관련이 있는 기념물 등이 소장되어 있다. 이곳은 당시 많은 평범한 쿠바인들이 살아가고 있던 열악한 환경을 보여 줌으로써 어째서 혁명이 일어나게 되었는지 설명하려 한다. 건물 외부에는 '그랜마 기념관'이 있다.

 

체 게바라 기념관 [Che Guevara Monument]

 

쿠바의 아이콘인 혁명가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를 기념하기 위해 지어진 호세 델라라의 거대한 청동 작품은 가히 현대 예술이 이루어 낸 승리이며, 이 지역을 지배하고 있다. 박물관 안에는 체와, 전사한 그의 동지들을 추모하는 전시물과 현판들이 있다. 이 기념관이 문을 연 이후, '체의 도시'라고도 알려진 산타클라라는 관광객들과 열광적인 체의 팬들에게 메카가 되었다. 체는 1928년 부유한 아르헨티나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정치계에 이끌렸고, 쿠바의 게릴라들과 함께 아르헨티나를 떠났다. 그들의 목적은 쿠바의 우파 독재자인 풀겐시오 바티스타를 타도하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