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파한의 메이단 에맘 [Meidan Emam, Esfahan]

에스파한의 왕궁 광장인 이맘 광장은 페르시아 사파비 왕조(1722년까지) 때의 사회 문화적 삶의 기념물이다. 넓은 안뜰이 있는 큰 숙사라는 점에서 이란에서는 예외적인 도시 유적이다. 이란의 도시들은 일반적으로 공간의 여유 없이 빽빽하게 밀집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란 사파비 왕조의 샤 압바스는 1587년〜1628년의 재위 기간에 에스파한을 수도로 삼고 대대적인 미화 재건 사업을 벌였다. 에스파한 중심부는 널따란 왕궁 광장(메이단 에 샤)이 특징인데, 무척 아름답고 웅장해서 ‘세계의 이미지’로 불렸다. 사방에 2층 구조의 아케이드로 연결된 웅장한 건물이 둘러서 있다.

 

아르메니아 교회 수도원 유적 [Armenian Monastic Ensembles]

이란 북서부의 아르메니아 교회 수도원 유적은 아르메니아 기독교 신앙을 따르는 세 곳의 수도원, 곧 성 타데우스 수도원, 성 스테파노스 수도원, 조르조르 예배당을 말한다. 이 건축물들은 아르메니아의 건축과 장식예술 전통의 세계적인 가치를 보여 주는 대표적인 예이다. 가장 오래된 성 타데우스 수도원은 7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들 건축물은 특히 비잔틴, 동방정교회, 페르시아 등 다른 지역 문화와의 교류를 보여 주는 매우 중요한 증거이다. 아르메니아 문화권 중심 지대의 남동쪽 끝에 위치한 수도원들은 이 지역에 아르메니아 문화를 보급하는 거점 역할을 하였다.

 

초가 잔빌 [Tchogha Zanbil]

 

메소포타미아 밖에서 현존하는 몇 남지 않은 지구라트이다. 이란 남서부에 있는 수사에서 남쪽으로 약 45km 떨어져 있다. BC 1250년에 엘람(Elam)의 운타시-나피리샤 왕에 의해 건설되었다. 피라미드형의 사원으로 엘람 건축물임을 알 수 있는 최고의 건축물이다. 구조는 5개의 중심으로 된 벽을 축으로 하였다. 그러나 현재는 3개만이 남아 있다. 이 벽 안쪽에는 신에게 바치는 지구라트가 올라가있고 가운데에는 작은 신들을 위한 11개의 신전이 있다. 원래는 22개의 신전을 짓기로 하였으나 왕의 사망으로 공사가 중단되었다.

           
 

   
 

슈슈타르 관개시설 [Shushtar Historical Hydraulic System]

 

슈슈타르 관개시설은 기원전 5세기 다리우스 대제 때 지어진 천재적인 창조물이다. 이 시설은 카룬 강의 두 개의 주요 지류 수로를 포함하고 있다. 그중 가르가르 수로는 터널을 이용하여 방앗간에 물을 보내고, 이 물은 슈슈타르 시 전체에 공급되었다. 웅장한 폭포에서 쏟아져 내린 물은 하류의 웅덩이에 고인다. 웅덩이의 물은 도시 남쪽의 평야로 흘러들어 미나브, 천국)로 알려진 40,000㏊의 과수원과 농지에 물을 공급한다. 슈슈타르 관개시설은 전체 시설을 관장하는 운영 센터인 살라셀 카스텔, 수위를 측정하는 탑, 댐, 다리, 저수조, 방앗간을 비롯한 놀라운 유적들을 포함하고 있다.

 

페르세폴리스 [Persepolis]

 

그리스어로 '페르시아의 도시'를 의미한다. 페르시아인들은 '파르사'라고 부른다. 파르사는 파르스에서 유래했는데, 파르스 지방 또는 파르스 지방에 사는 사람들을 말한다. 페르시아 제국은 파르스에서 시작되어, 파르사는 제국의 이름이면서 동시에 수도로 사용되었다. 다리우스 1세가 즉위하여 내란이 진정된 후 파사르가다에·수사에 이어서 건설한 수도로서, 산을 배후에 두고 사면 이용하여 석조 기단을 만들고 그 위에 궁전·후궁·보고·기록보존소·아파다나·백주궁전 등을 줄지어 지은 장대한 것이었으나 알렉산드로스대왕의 페르시아 정복 때 소실되었다.

 

파사르가대 [Pasargadae]

 

파사르가대 유적은 오늘날 이란의 파르스 주에 있는 페르세폴리스에서 북동쪽으로 약 7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고대 아케메네스 왕조의 수도였으며, 엘람인의 설형문자 기록에 의하면, 파사르가대의 고대 명칭은 바트라카타스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 도시는 BC 546년부터 아케메네스 왕조의 키루스 2세에 의해 건설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다리우스 대왕이 폴바르 강을 따라 70km 하류에 있는 페르세폴리스로 수도를 이전하기 전까지 이 왕조의 수도였다.파사르가대에서 가장 오래된 부분은 건축물은 ‘탈-이 타흐트’라 불리는 성채로, 왕궁을 내려다 보며 세워져 있다.

           
     
 

하트라 [Hatra]

 

1세기경 종교도시로서 발족하여 훗날 군사기지와 대상들의 휴식지 역할도 하였으며, 두 번에 걸친 로마군의 포위에도 견디어냈으나, 3세기 중엽 사산왕조의 샤푸르 1세의 공격으로 붕괴되었다. 성지는 대소(大小) 2중 성벽과 도랑으로 에워싸여 있으며, 중앙의 직사각형 성역에는 태양신 샤마쉬의 대신전 터가 있다. 신전은 메소포타미아에서는 드문 절석으로 구축되어 있고, 아치를 사용한 이반형식, 궁륭식의 예도 있으며, 많은 대리석과 석회암 조각이 출토되었다. 건축 ·조각에서는 고대 오리엔트(파르티아)와 헬레니즘의 전통이 함께 융합되어 있는 점에서 팔미라 등과 기본적으로 일치한다.

 

에르빌 성채 [Erbil Citadel]

 

에르빌 성채는 웅장한 규모의 타원형 ‘텔(tell)’ 위에 우뚝 솟은 요새화된 옛 도시로서 현존하는 희귀한 사례이다. 이곳에서는 고고학적으로 의미 있는 둔덕인 인공 지형 위에 형성된 도시 주거 형태, 그리고 그랜드게이트를 중심으로 방사상으로 뻗은 미로 같은 골목길과 막다른 길로써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는 오스만 시대의 도시 구조를 볼 수 있다. 성채는 에르빌 시를 내려다보는 난공불락의 요새와 같은 느낌을 준다. 에르빌은 아시리아 왕국의 중요한 정치적 · 종교적 중심지였던 아르벨라와 연관이 있으며 언덕 안에는 이전에 발달했던 촌락의 흔적이 다층적으로 묻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쿠세이르 암라 [Quseir Amra]

 

8세기 초에 계절성 물길인 와디 바툼 옆에 건설된 이 사막 시설물은 주둔군이 있는 요새이자 우마이야 왕조 칼리프의 위락을 위한 궁전이었다. 매우 잘 보존된 이 아담한 궁전에는 접견실과 함맘, 당대의 세속 예술을 풍부하게 반영한 구상 벽화가 있다. 함맘과 접견실의 넓은 프레스코 화는 우마이야 왕조의 이슬람 건축물 중에서도 독특한 것이다. 벽화에서는 고전적인 이교도적 주제의 영향, 비잔틴 양식의 묘사와 사냥 장면, 동물과 새의 묘사, 그리스어와 아랍어 비문이 발견되었다. 온열 욕실 돔 지붕의 황도 12궁 그림은 돔에 그린 천궁도 중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작품에 속한다.

           
     
 

움아르 라사스 [Um er-Rasas]

 

라사스지역 유적이라고도 한다. 로마제국과 비잔틴제국시대의 유적을 비롯하여, 3세기말부터 9세기에 이곳을 지배했던 이슬람왕조 시대의 유적이 있다. 움아르 라사스는 로마군의 군사기지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로마제국 시대의 그리스도교회 유적이 몇 군데 남아 있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성스테판교회의 정사각형 탑 2개와 내부에 남아 있는 모자이크 바닥이 유명하다. 이 탑은 기둥 위 혹은 탑 꼭대기에서 고행을 하는 수도승, 즉 '주상고행자'가 고행을 실천했던 것으로 보이는 곳이다. 움아르 라사스에 대한 본격적인 발굴작업은 아직까지 이루어진 적이 없dj, 대부분의 그대로 묻혀 있다.

 

페트라 [Petra]

 

페트라는 나바테아인이 건설한 산악도시이다. 나바테아인은 BC 7세기부터 BC 2세기경까지 시리아와 아라비아반도 등지에서 활약한 아랍계 유목민으로, 사막 한가운데에 있는 붉은 사암 덩어리로 이루어진 거대한 바위 틈새에 도시를 건설한 후 생활하였다. 이집트, 아라비아, 페니키아 등의 교차지점에 위치하여 선사시대부터 사막의 대상로를 지배하여 번영을 누렸다. 좁고 깊은 골짜기를 따라서 극장과 온수 목욕탕, 그리고 상수도 시설이 갖추어진 현대 도시 못지않은 도시가 있다. 협소한 통로와 협곡으로 둘러싸인 바위산을 깎아 조성된 페트라의 건물들은 대부분 암벽을 파서 만들어졌다.

 

와디 럼 보호구역 [Wadi Rum Protected Area]

 

자연 및 문화 복합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면적이 74,000㏊인 이 유산은 사우디아라비아 접경의 요르단 남부에 있다. 광범위하게 분포되어 있는 좁은 협곡, 자연적으로 생긴 아치형 지형, 우뚝 솟아오른 절벽, 비탈면, 대규모 경사면 붕괴, 동굴 등 다양한 사막 경관을 보여 준다. 암각화와 비문 그리고 여러 고고학적 유산들은 약 12,000년 동안 인간이 이곳에서 거주하며 자연 환경과 상호 작용하였다는 것을 증명한다. 20,000여 점에 이르는 비문과 25,000여 점의 암각화를 통해 인류 사상의 진화와 초기 문자의 발전을 짐작할 수 있다.

           
     
 

아누라다푸라 [Anuradhapura]

 

스리랑카(세일론)의 수도 콜롬보 동북 약 200km에 있는 고도. B.C. 4세기경 창건된 후 장기간에 걸쳐 수도였음. B.C. 3세기, 불교전래 이후 번영하여 그중 성벽이 있는 사방 25km 의 도성 안에는 많은 사탑이 건조되었음. 그러나 남인도 타미르 족의 침공으로 8세기 이후 버려졌으며, 그후 수리를 하였으나 13세기 이후 다시 황폐화 되었다. 그 부근에는 불교전래와 함께 보드가야 숲에서 원목이 이식되었다는 성보리수, 세일론 최초의 건물인 투파라마, 르완베리, 미리사베티야(B.C. 1세기), 아바야기리, 제타바나 등과 원뿔대형식의 거탑이 있는 사원유적이 다수 산재한다.

 

담불라 황금 사원 [Golden Temple of Dambulla]

 

BC 1세기 무렵 신할라왕조 제19대왕 와타가마니 아바야가 건설하였다. 암벽 밑의 흰색 벽으로 이루어진 회랑 안쪽에 자연상태의 바위를 파낸 석굴 5개가 늘어서 있다. 석굴 안에는 불상과 신상 160여 개가 안치되어 있고, 천장와 벽에는 화려한 빛깔의 벽화가 빽빽이 그려져 있다. 석굴 가운데 가장 중심이 되는 것은 제2굴인 마하라자 비하라(위대한 왕의 사원)이다. 정면의 너비 약 52m, 안쪽 길이 약 23m, 입구 부분의 높이 약 7m이고 조각상 61개가 안치되어 있다. 굴 내부는 본당·홀·회랑의 3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동쪽과 서쪽에 입구가 있다.

 

.폴로나루와 고대 도시 [Ancient City of Polonnaruwa]

 

폴로나루와 고대 도시는 몇 개의 문명에 대해 말해 주고 있는데, 특히 브라만교를 신봉한 정복 세력 촐라 왕조의 문명과 12세기와 13세기 동안 독립을 유지했던 신할리즈족의 문명을 찾아볼 수 있다. 12세기에 과대 망상적인 군주 파라크라마바후 1세가 건설한 이 어마어마한 수도는 역사상 가장 놀라운 도시 건설 중 하나이다. 이는 그 특별한 규모 때문이기도 하고 건물과 자연환경의 매우 특수한 관계 때문이기도 하다. 고대 도시는 불교와 신할리즈족 역사의 성지이기도 하다. 이곳에 있는 부처의 치아는 신할리즈족 왕국의 수호물로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