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코르 [Angkor]

 

외벽 길이 총 5.5km, 중앙탑 높이 65m, 해자 너비 200m, 5m 두께의 사암…. 이런 거대한 수치들 때문에 앙코르와트는 마치 인간이 아닌 신의 작품처럼 보인다. 더구나 발견 당시 무성한 밀림에 덮여 있어 신비감이 더했다. 1860년 캄보디아 밀림 속에서 발견된 앙코르 유적지는 앙코르왕조(9~15세기)의 수도였다. 그러나 15세기 수도를 프놈펜으로 옮긴 뒤 오랫동안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졌다. 현재 이곳에는 반경 30여 km에 수십 개의 사원과 왕궁 등 고대 건축물이 흩어져 있다.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던 이 웅장한 유적지에서 단연 돋보이는 것은 앙코르와트다.

 

프람바난 힌두 사원군 [Prambanan Temple Compounds]

 

마을 이름을 딴 프람바난은 자바 주에서 가장 큰 사원이며, 실제로 욕야카르타에서 북동쪽으로 15㎞쯤 떨어져 있는 거대한 힌두 사원이다. 힌두교 3대 신에게 봉헌된 프람바난 사원은 부조 장식을 했으며, 인도네시아와 그 지역 시바 예술의 대표적인 예로 손꼽힌다. 사원은 9세기에 세워졌으며, 3개의 동심원 광장으로 설계되었다. 유적지 안에 총 224개의 사원이 있다. 중원에는 사원이 16개 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브라마 사원 북쪽, 비슈누 사원 남쪽의 중앙부에 있는 높이 47m의 시바 사원이다. 고대 힌두 건축의 3가지 걸작은 지역에 따라 프람바난 사원 또는 로로종그랑 사원으로 불린다.

 

비블로스 [Byblos]

 

지중해에 면한 고대 항구도시로 레바논 베이루트 북쪽으로 약 40km 지점에 있다. 알파벳 등 인류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고대 해양 왕국 페니키아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이곳에 도시가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은 BC 4500년경이며, BC 1200년 이후에는 페니키아의 3대 항구도시 중에 하나로 성장했다. 교역에 능했던 페니키아인들은 레바논에서 나는 백향목을 수출하고, 이집트 산 파피루스를 사들여 그리스 등지에 파는 중계무역을 통해 부를 축적했다. 비블로스라는 도시 이름 자체가 파피루스를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나온 것이다. 바로 이 비블로스가 오늘날 성경 즉 바이블의 어원이 되었다.

           
 

   
 

안자르 유적 [Ruins of Anjar]

 

태양이 비치는 레바논 하늘을 배경으로 헐벗은 해골처럼 서 있는 이 웅장한 유적은 이 지역의 역사를 돌이켜 보게 해 주는 흥미진진한 흔적이다. 오늘날 안자르의 인구는 주로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을 때 프랑스가 데려온 아르메니아 이민자로 이루어져 있다. 아르메니아인이 도착했을 때, 도시는 인적 없고 황량한 사막과도 같았다. 피난민은 텐트 안에서 살았으며 많은 사람들이 질병과 굶주림으로 죽었다. 그 이후 그들은 안자르를 고향으로 삼아 다시 녹색이 감도는 경작 지역으로 바꾸어 놓았다. 칼리프 왈리드 1세가 이 도시를 지었으며 곧 번영하는 떠들썩한 도시가 되었다.

 

티레 고고유적 [Tyre]

 

지중해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로 꼽히는데, 기원전 2,750년부터 주거지가 형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전성기는 10세기 이후로 당시 티레는 고대 국가 페니키아의 가장 큰 항구도시였다. 티레 출신 선원들이 카디즈(Cadiz)와 카르타고(Carthage) 등 지중해에서 번창했던 식민도시를 건설한 것도 이 무렵이다. 당시 티레의 번영과 화려한 모습에 대한 언급이 <구약성서>에도 자주 등장한다. 기원전 332년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에게 점령당한 뒤 기원전 64년 로마의 속주가 되었고 십자군 원정 말기부터 쇠퇴의 길을 걷는다.

 

루앙프라방 [Town of Luang Prabang]

라오스 메콩 강가에 들어선 루앙 프라방 시는 근대화의 폭풍이 휩쓸고 간 아시아에서 과거 모습을 가장 잘 보존하고 있는 도시로 꼽힌다. 14세기 란 상 왕국의 수도가 된 이래 라오스에 들어선 여러 왕국의 수도이자 종교 및 상업 중심지로 번성했으며, 1975년 왕정이 폐지될 때까지 라오스 왕이 머물렀던 유서 깊은 도시다. 루앙 프라방은 도시 전체가 박물관이라 할 정도로 많은 전통 건축물과 유적들을 가지고 있다. 또한 19-20세기에 프랑스 식민지배를 받았던 흔적도 도시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데, 라오스의 전통 건축물과 식민지시대 건축물들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어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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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파삭 문화 경관 내 왓 푸 사원과 고대 주거지 [Vat Phou and Associated Ancient Settlements within the Champasak Cultural Landscape]

 

왓 푸 사원(Vat Phou)을 포함한 참파삭(Champasak) 문화 경관은 1,000년이 넘도록 놀라울 만큼 잘 보존되었다. 이곳은 산꼭대기부터 강변까지를 축으로 삼아 약 10㎞에 걸쳐 사원, 사당, 수도 시설을 기하학적으로 배치하여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힌두교의 관점에서 표현하고 있다. 메콩 강 근처에 세운 계획도시 2개와 푸카오 산 역시 유적에 포함된다. 이곳은 5세기〜15세기에 걸쳐 주로 크메르 제국이 지배하던 시기에 발전하였다.

 

.순다르반 [The Sundarbans]

 

순다르반의 맹그로브 숲은 세계에서 가장 큰 맹그로브 숲이며, 140,000㏊에 이른다. 벵골 만의 갠지스 강, 브라마푸트라 강, 메그나 강이 만나는 삼각주 지역에 있다. 작은 섬 주변에 조석수로, 갯벌, 내염성이 있는 맹그로브 숲이 복잡한 그물처럼 얽혀 있으며, 지금도 생태학적 과정이 진행 중이다. 이 지역은 260여 종의 조류, 벵골호랑이, 인도악어, 인도비단뱀과 같은 멸종 위기종을 비롯해 다양한 동물들이 서식하는 지역으로 이름 높다. 1987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 목록에 등재되었다.

 

칼라트 샤르카트 [Qal'at Sherqat]

 

오늘날 칼라트 샤르카트(Qal'at Sherqat)라고 불리는 고대 도시 아슈르(Ashur)는 메소포타미아 북부의 티그리스 강 유역에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은 천수(天水) 농업과 관개농업의 경계라는 지리생태학적 특성을 가진 지역이다. 아슈르에 도시가 형성된 것은 기원전 3000년 무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원전 14세기~9세기에 아시리아 제국의 첫 수도이자 무역거점으로서 국제적으로 중요한 도시가 되었다. 또한 아슈르 신을 모시는 아시리아 인들에게는 종교 중심지이기도 했다. 바빌로니아에 의해 파괴되었으나 1세기~2세기 파르티아(Parthia) 제국 시대에 재건되었다.

           
     
 

부하라 역사 지구 [Historic Centre of Bukhara]

 

실크 로드에 자리하고 있는 부하라는 약 25세기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으며, 중앙아시아 중세 도시 가운데 도시 구조의 많은 부분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가장 완벽한 예이다. 특히 흥미로운 기념물들에는 10세기 이슬람 건축의 걸작으로 유명한 이스마일 사마니의 묘와 수많은 17세기의 이슬람 마드라사가 있다. 사실상 노천 박물관인 이 도시의 역사 지구는 도시의 긴 역사와 하나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근래의 고고학 발굴로 부하라 유적에 있는 정착지는 일찍이 기원전 제2천년기(기원전 2000~기원전 1001)에 쿠샨(Kushan) 제국의 일부였음을 밝혀냈다.

 

이찬 칼라 [Itchan Kala]

 

이찬 칼라(Itchan Kala)는 대상(隊商)들이 사막을 건너 이란으로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휴식을 취하던 곳으로, 약 10m 높이의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옛 히바 오아시스(Khiva oasis)의 도심지이다. 비록 아주 오래된 기념물들은 일부밖에 남아 있지 않지만 중앙아시아의 뛰어난 이슬람 건축이 잘 보존되어 있다. 이곳에는 주마(Djuma) 모스크, 무덤들, 마드라사(madrasa, 이슬람교 고등교육 시설)들, 그리고 19세기 초에 알라쿨리칸(Alla-Kulli-Khan)에 의해 건설된 2개의 웅장한 궁전 등의 뛰어난 건축물들이 있다.

 

바알베크 [Baalbek]

 

바알베크의 신전들은 해발 1,150m 고원에 위치한 비옥한 베카 평원을 접하며, 안티레바논 산맥의 남서쪽 비탈 기슭에 자리하고 있다. 200여 년에 걸쳐 지어진 거대한 건축물 덕분에 이 도시는 로마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성지 중의 한 곳으로 이름이 났고, 제정 로마 시대 건축의 모범이었다. 페니키아인들이 숭배하는 로마식으로 표기한 새 신들인 유피테르·베누스·메르쿠리우스를 숭배하기 위해서, 순례자들은 헬리오폴리스로 몰려들었다. 더 오래된 페니키아 전통의 자취와 함께 그리스 로마 시대의 유적들이 결합된 이곳은 탁월한 예술적 가치와 건축적 가치에 있어서 그 중요성이 크다.

           
     
 

술타니야 [Soltaniyeh]

 

몽골 인이 세운 일한국의 수도 술타니야(이란의 고대수도)에 있는 울자이투의 영묘로 1302년~1312년에 건설되었다. 울자이투의 영묘는 페르시아 건축 양식의 본보기이자 이슬람 건축의 발전에 있어 중요한 기념물이다. 팔각형 건물이 8개의 첨탑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터키옥으로 덮인 50m 높이의 돔 지붕이 있다. 이는 이란에서 현전하는 것들 중 가장 오래된 이중 구조의 돔 지붕이다. 영묘 내부 장식도 훌륭하다. 이란의 철학자 A.U. 포페는 술타니야의 영묘를 일컬어 ‘타지마할을 예견한’ 건물이라고 극찬했다.

 

셰이크 사피 알딘 카네가와 사원 유적군 [Sheikh Safi al-din Khānegāh and Shrine Ensemble]

셰이크 사피 알딘 카네가와 사원 유적군은 16세기 초에서 18세기 말 사이에 건설된 수피 교의 영적 수련을 위한 장소이다. 이란의 전통적인 건축 양식을 사용하여 다양한 기능을 담당하는 공간을 만들어 최대한 사용할 수 있도록 건축하였다. 여기에는 셰이크 사원으로 가는 7개 부분으로 나누어진 길이 포함된다. 또 사원에는 8개의 문이 있는데 각각 수피즘의 품성을 나타낸다. 유적은 풍부하게 장식된 정면과 내부, 뛰어난 고대 미술품들을 잘 간직하고 있다. 중세 이슬람 건축 양식의 여러 가지 요소들을 간직한  집합체이다.

 

.에스파한의 메이단 에맘 [Meidan Emam, Esfahan]

 

에스파한의 왕궁 광장인 이맘 광장은 페르시아 사파비 왕조(1722년까지) 때의 사회 문화적 삶의 기념물이다. 넓은 안뜰이 있는 큰 숙사라는 점에서 이란에서는 예외적인 도시 유적이다. 이란의 도시들은 일반적으로 공간의 여유 없이 빽빽하게 밀집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란 사파비 왕조의 샤 압바스는 1587년〜1628년의 재위 기간에 에스파한을 수도로 삼고 대대적인 미화 재건 사업을 벌였다. 에스파한 중심부는 널따란 왕궁 광장이 특징인데, 무척 아름답고 웅장해서 ‘세계의 이미지’로 불렸다. 사방에 2층 구조의 아케이드로 연결된 웅장한 건물이 둘러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