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르트르 대성당 [La Cathédrale de Chartres]

프랑스의 곡창 지대인 보스지방의 중심지 샤르트르에 있는 고딕 양식의 대성당. 큰 규모와 다양한 조각, 스테인드글라스가 유명하며, 성모 마리아의 옷 조각이라고 주장되는 성물(聖物)을 보관하고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프랑스 고딕 양식의 총체라고 평가되는 성당은 3차례나 화재를 입고 다시 짓기를 반복한 험난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9세기에 지어진 성당은 11세기 초와 12세기 초에 각각 화재를 입은 후 재건되었고, 1194년 또다시 화재를 입어 건물 대부분이 파손된 이후 1220년에 다시 지어져서 오늘날의 외관을 갖추게 되었다

 

부르주 대성당[ Bourges Cathedral ]

 

1195년 건립을 시작하여 1324년 5월 13일에 완공되었으며, 최초의 그리스도교 순교자인 성 스데반에게 헌정되었다. 폭15m, 길이118m의 본당 회중석을 갖춘 오랑식 성당으로 독특한 고딕양식 건물이다. 부르주 대성당이 위치하고 있는 부르주(Bourges)지역은 고대 로마 도시인 아바리쿰이 있던 곳이었다. 기록에 따르면 그 곳에서는 3세기에 이미 갈리아 최초의 그리스도교 숭배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11세기 고즐랭 대주교에 의해 그 자리에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이 들어선다. 이 새로운 성당이 부르주 대성당이다.

 

노트르담 대성당 [Cathedral of Notre-Dame de Paris]

 

센 강의 시테 섬에 자리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대성당. 12세기 고딕 건축의 걸작으로 꼽히는 노트르담 대성당의 장엄하고 웅장한 모습은 어느 쪽에서 보아도 감탄을 자아낸다. 그중에서도 아르슈베슈 다리를 건넌 센 강 왼쪽 기슭에서 보는 남쪽과 뒤쪽의 경관은 파리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꼽힌다. 노트르담은 '우리의 귀부인'이라는 의미로 성모마리아를 가리킨다. 대성당은 1163년에 파리의 주교였던 모리스 드 쉴리에 의해 착공되었다. 그 이전인 갈리아, 로마 시대부터 이 지역은 성스러운 장소였으며 시대에 따라 다양한 양식의 교회가 세워졌다.

                 
 

 

   
 

 

베르사유 궁전 [Chateau de Versailles]

 

원래 루이 13세가 지은 사냥용 별장이었으나, 1662년 무렵 루이 14세의 명령으로 대정원을 착공하고 1668년 건물 전체를 증축하여 외관을 가로축 부분이 앞으로 튀어나온 U자형 궁전으로 개축하였다. 1680년대 다시 커다란 건물 2동을 증축하고 남쪽과 북쪽에 별관과 안뜰을 추가하여 전체길이가 680m에 이르는 대궁전을 이루었다. 궁전 중앙에 있던 방을 '루이 14세의 방'으로 꾸몄다. 거울의 방은 길이 73m, 너비 10.5m, 높이 13m인 회랑으로서 거울이 17개의 아케이드를 천장 부근까지 가득 메우고 있고 천장은 프레스코화로 뒤덮여 있다.

 

아미앵대성당 [Amiens Cathedral]

 

프랑스의 고딕건축을 대표하는 종교건축물이며 샤르트르대성당·랭스대성당과 더불어 고딕건축의 파르테논신전이라고 불린다. 1220년에 착공하여 신랑(身廊)·회랑·정면·본당의 순으로 만들어 1288년에 완성하였다. 길이 145m, 몸체의 너비 32m(익랑부까지는 65.5m), 볼트 높이 42.3m, 넓이 7,700㎡이다.외관은 높은 벽을 받쳐주는 받침벽과 플라잉버트레스가 돋보이고 내진에는 신랑과 2개의 측랑, 앰뷸러토리 등을 갖추고 있다. 특히 높이 20m에 이르는 아치 구조는 고딕의 특색인 상승성(上昇性)을 강조하는 데 큰 효과를 거두고 있다.

 

몽생미셸과 만 [Mont-Saint-Michel and its Bay]

 

코탕탱반도의 남쪽 연안에서 크게 만곡한 생말로만의 연안에 있다. 화강암질의 작은 바위산으로서, 둘레 900m, 높이 78.6m이다. 만조 때가 되면 1875년부터 육지와 연결된 퐁토르송방파제만 남긴 채 바다에 둘러싸인다. 대천사 미가엘이 바위산 꼭대기에 성당을 지으라고 명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며, 바위산 전체가 수도원으로 되어 있다. 수도원은 노르망디공 리처드 1세가 966년에 지은 베네딕투스회 수사들의 수도장으로서, 수세기에 걸쳐 증·개축되어 중세에는 대표적인 순례지로 발전하였다. 10세기 말 미가엘을 모신 예배당을 바위산 서쪽에 있는 지하예배당(노트르담수테르)으로 개축하였다

                 
       
 

 

퐁텐블로 궁전과 정원 [Palace and Park of Fontainebleau]

 

퐁텐블로 궁전의 건축 양식과 실내 장식은 프랑스뿐만 아니라 전 유럽의 미술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프랑수아 1세는 이 궁전을 ‘신 로마’로 만들기 위해 이탈리아의 유명한 예술가들을 불러들였다. 이탈리아의 예술가들의 영향으로 프랑스는 르네상스의 미학을 도입하는 중요한 발걸음을 내디딜 수 있었다. 16세기에 이곳을 ‘신 로마’로 만들고 싶어 했던 프랑수아 1세는 궁전을 완전히 바꾸고 확장하여 더욱 아름답게 꾸며 놓았다. 그때부터 퐁텐블로 궁전은 프랑스 궁정의 가장 중요하고 고급스러운 유적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가르 수도교 [Pont du Gard]

 

고대 로마인들은 솜씨 있고 발명 재간이 뛰어난 엔지니어였다. 이들이 이루어 낸 업적 중 단연 뛰어난 것은 그들이 제국의 여러 군데에 지었던 거대한 수도교(水道橋)였다. 높이가 49m에 달하는 퐁 뒤 가르는 이러한 수도교 중 가장 높고, 또한 잘 보존되어 있는 건축물 중 하나이다. 수도교는 주요 정착촌에 물을 대기 위해 설계되었는데, 수로 대부분의 구간에서 물은 돌로 된 지하 수로를 따라 운반되지만, 이곳에서는 가르 강(또는 가르돈 강) 계곡 위로 흘러온다. 퐁 뒤 가르는 세 줄의 아치로 이루어져 있는데, 물이 흐르는 관은 맨 위 아치 안에 들어 있다

 

샹보르 성 [Chateau de Chambord]

 

프랑수아 1세(재위 1515-1547)는 이탈리아 원정 중인 1515년 9월 마리냐노전투에서 밀라노 공국의 동맹군을 물리쳤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샹보르 성의 건립을 지시했다. 이미 앙부아즈 성이 왕실 주거지로 사용되고 있었기 때문에 샹보르 성은 프랑수아 1세가 단기간 머무는 사냥 별장에 불과했다. 그러나 국외 왕족들이나 중요한 사절(使節)들이 프랑스를 방문할 때면 늘 샹보르 성으로 초청되었는데, 웅장하고 화려한 성의 규모가 프랑수아 1세의 부와 권력을 과시하기에 좋았기 때문이다. 1519년에 시작된 공사에는 이탈리아 건축가와 프랑스의 장인들이 대거 투입되었다.

                 
       
 

 

스트라스부르 옛 시가지 [Strasbourg – Grande île]

 

프랑스와 독일의 국경지대에 위치하며, 라인강의 지류 이르 강에 둘러싸인 도시다. 독일 국경에서 3km밖에 떨어지지 않은 변방의 도시지만 오래 전부터 로마 직속의 주교관할구이자 프랑스의 옛 행정구역인 알자스 지방의 경제·문화 중심지로 번영을 누려왔으며, 옛 시가지에는 당시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스트라스부르의 옛 시가지는 흔히 ‘큰 섬’이라는 뜻의 프랑스어 그랑띨이라고 불린다. 이르 강의 지류가 동그랗게 에워싸고 있어 흡사 섬과 같은 형상을 하고 있다. 노트르담 대성당과 추기경이 머물던 로앙 성, 1567년 창립된 스트라스부르 대학 등의 건축물이 있다.

 

아비뇽 역사지구 [Historic Centre of Avignon]

 

파리에서 677km, 론 강 왼쪽 편에 위치한 아비뇽은 12세기 생베네제 다리가 건설되면서 이탈리아와 에스파냐로 가는 교통의 요지로 부상했다. 그 뒤 1309년 교황 클레멘스 5세가 로마에서 아비뇽으로 피신해오면서 도시는 일대 변혁을 맞게 되었다. 1309년부터 1377년까지 68년간 아비뇽은 교황청의 도시로 종교, 정치, 상업의 중심지가 되어 번영을 누렸다. 15세기에 아비뇽에 르네상스 양식이 도입되어 많은 뛰어난 건축물들이 탄생했다. 아비뇽 역사지구의 대표적인 건축물은 로마네스크 후기 양식으로 지어진 노트르담 데 돔 성당, 셍베네제 다리, 교황청 궁전 등이 있다

 

카르카손 역사도시 [Historic Fortified City of Carcassonne]

 

프랑스 파리에서 남쪽으로 700km 가량 떨어진 곳, 툴루즈와 몽펠리에, 스페인의 바르셀로나를 꼭짓점으로 하는 삼각형의 중앙에 카르카손이 있다. 카르카손은 유럽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잘 보존된 중세시대의 요새도시다. 도시를 가로지르는 오드 강을 사이에 두고 카르카손은 성벽에 둘러싸인 시테 지역과 바둑판 모양의 번화가 지역으로 나뉜다. 1,650m에 달하는 외곽의 중세풍 원형 성벽이 보존되어있다. 요새는 원형의 이중 성벽에 의해 둘러싸여 있고. 외벽 앞에는 외부의 침입을 막기 위한 해자가 설치되어 있다.

                 
       
 

 

루아르 계곡과 고성들 [The Loire Valley between Sully-sur-Loire and Chalonnes]

 

프랑스 중서부 루아르 지방은 천혜의 자연 덕분에 예로부터 '프랑스의 정원'이라 불리던 지역이다. 프랑스에서 가장 길다는 루아르강 주위로 녹음이 우거진 언덕과 풍요로운 들판 등 천혜의 자연조건으로 투르, 앙제, 블루아, 오를레앙 등 유서 깊은 도시들이 강을 따라 자리하고 있다. 중세 이후에는 이 지역은 왕족과 귀족들의 휴양지로 쓰이며 많은 성이 건축되었다. 아름다운 자연을 배경으로 둥지를 튼 고성들은 주로 15세기부터 16세기에 지어진 것들로 건축학적으로도 빼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베즐레, 교회와 언덕 [Vézelay, Church and Hill]

 

베즐레의 베네딕트회 수도원은 9세기에 건립되었고, 얼마 후 성 막달라 마리아의 유해를 안치했다. 그 후 이 수도원은 중요한 순례지가 되었다. 성 베르나르는 1146년 이곳에서 제2차 십자군 원정의 당위성을 역설했고, 1190년 잉글랜드의 사자왕 리처드와 프랑스의 왕 필리프 2세가 이곳에서 만나 제3차 십자군 원정을 떠났다. 12세기에 세워진 수도원 교회인 베즐레 마들렌 교회의 건축미는 기둥머리의 조소 작품과 정문이 유명하며, 부르고뉴 지방의 로마네스크 미술 및 건축의 걸작으로 꼽힌다.

 

.아를르의 로마시대 기념물 [Arles, Roman and Romanesque Monuments]

아를(Arles)은 고대 도시가 중세 유럽 문명에 적응한 좋은 본보기이다. 아를에는 로마 시대의 인상적인 기념물들이 있다. 그중 가장 오래된 로마 시대의 원형 극장과 지하회랑은 기원전 1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를은 콘스탄티누스 1세가 만든 목욕탕과 알리스캉 공동묘지에서 보듯이 4세기에 두 번째 황금시대를 맞았다. 11세기와 12세기에 아를은 다시 한 번 지중해에서 가장 매력적인 명소로 명성을 얻었다. 도시 성벽 안에 세운 생 트로핌 대성당은 프로방스 지방의 중요 로마네스크 양식의 기념물로 회랑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